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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블시론] “그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

안교성(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역사신학)


기도의 모범이라고 할 수 있는 주기도문 가운데 “그 나라를 오게 하여 주시며”(눅 11:2, 표준새번역개정판)란 표현이 있다. 이를 나눠보면 ‘그 나라’ ‘오게’ ‘하여 주시며’이다. 세 개념 모두 설명이 필요하지만, 여기선 첫 번째에 주목하자. ‘그 나라’가 이상적인 것이라면, 그 나라가 ‘오게’ 바라는 것도, 그런 바람을 ‘하여 주시며’라고 기도하는 것도 당연하지 않은가. 문제는 그 나라이다. 그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 아니 어떤 나라여야 할까?

한국만큼 정치화된 나라도 없다. 격동의 근현대기를 거치다 보니 한국인은 모두 정치 전문가가 됐다. 더구나 이제 선거철이 다가온다. 선거철이 되면 온갖 국가적 이상론이 난무한다. 종교인은 정치적 이상론에 종교적 관점까지 더해 정치종교적 이상론을 제시한다. 물론 종교인도 국민의 일원인 만큼 이런 시도는 존중돼야 한다. 다만 종교인의 비전이라고 해서 다 옳은 것은 아니다. 종교인이라고 해서 다 좋은 사람은 아닌 것처럼. 한국이 다종교사회라 여러 정치종교적 이상론이 있겠지만, 여기서는 기독교에 집중하자.

기독교인은 ‘그 나라’에 대해 언급할 때, 소위 ‘기독교 국가’라는 개념을 막연하게 심지어 아전인수격으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먼저 기독교 국가가 뭔지, 한국에 적용 가능한지를 따져보자. 기독교 국가는 역사 가운데 다양하게 출현했던 개념이다. 따라서 기독교 국가에 대한 사변적 설명보다 사례를 보는 게 이해에 도움이 된다.

첫째, 중세 유럽형 ‘기독교권’ 혹은 ‘기독교 세계(Christendom)’이다. 오늘날 기독교 영향력이 줄어든 것을 염려하는 사람들은 기독교권 모델을 주장하지만, 역사상 존재했던 기독교권은 타개의 대상이었다. 오늘날 기독교는 물론이고 타 종교도 대부분 정교일치의 국교 모델은 거부한다. 그런데도 이 모델을 고집하려면 역사적으로 드러난 문제점을 해명해야 한다. 이 모델은 향수의 대상은 될 수 있을망정 실질적 정치 비전은 되기 어렵다.

둘째, 미국형 ‘준국교 국가’이다. 미국형 모델이 중세 유럽형 모델과 다른 것은 국교를 인정하지 않는 정교분리가 헌법에 명시돼 있다는 점이다. 물론 미국은 정치적으로 세속국가이지만 문화적으로 기독교 영향력이 커서 준국교적 위상을 지녀온 것도 사실이다. 즉 미국 기독교는 법적 위상과 문화적 위상이 다르다. 미국 기독교가 여전히 준국교적 위상을 유지하는지도 의문이다. 미국 기독교는 초기에 국가 지원 없이 종교적 진정성만으로 승부를 걸었고, 이후에는 문화적 성격이 강한 ‘시민 종교’로 변모했으며, 오늘날은 점차 다종교사회의 일원으로 위축되고 있다. 더구나 한국은 미국처럼 기독교 전통이 유구한 준국교 국가도 아니다. 그런데도 이 모델을 고집하려면 미국과 한국의 차이를 인식하고 한국형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셋째, 국수주의적·종교 근본주의적 모델이다. 종교를 특정 국가나 집단 이데올로기 혹은 특정 종교 입장과 일치시키는 것이다. 이 모델은 언제나 어느 종교에나 나타날 수 있는 유혹이요 위험이다. 세계종교 혹은 보편종교인 기독교를 민족종교나 특정 집단 종교로 탈바꿈하려는 노력, 특정 종교 입장을 절대화하려는 노력 등인데, 이런 자세는 결국 종교전쟁이나 테러리즘으로까지 비화될 수 있다. 중세의 십자군 전쟁,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침략전쟁에 동조한 독일교회와 일본교회, 20세기 후반까지 인종차별에 눈먼 미국남부교회와 남아프리카교회 등을 들 수 있다.

종교의 본령은 정의, 평화, 생명, 사랑이다. 이제 한국의 기독교가 시민사회의 일원으로서 공공선을 추구하는 입장에서, 건전한 정치종교적 비전을 제시해 정치를 ‘인간적인 정치’가 되도록 만드는 일에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안교성(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역사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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