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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춘추] “여권은 섀도복싱만 하더라”

손병호 논설위원


4·7 재보선 뒤 더불어민주당 서울시당의 의뢰로 한국리서치가 얼마 전 작성한 서울 유권자 집단심층면접(FGI) 보고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유권자들의 여권에 대한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 정도로 격한 반응이라면 내년 대선까지도 그 상실감이 회복되기 쉽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여권은 그동안 야당이나 언론이 비판하면 야당·언론이라서 으레 공격하겠거니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이번 보고서는 여당의 의뢰로 실제 선거를 치른 유권자들의 생생한 속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마냥 무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보고서에는 우선 여권의 내로남불과 불공정에 대한 불만이 가득했다. 40대 남성은 “LH까지 터졌잖아요, 그러니까 이 정부를 못 믿어요. 오죽했으면 허경영 찍으려고 그랬다니까요”라고 했다. 50대 여성은 “(부동산 내로남불을 보니까) 이건 누구를 위한 국가이고, 누구를 위한 정부인가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라고 토로했다. “조국 사태 때 그들만의 리그가 있구나 하는 박탈감이 엄청났죠”(40대 여), “조국 뉴스가 나올 때마다 내 자식한테 못해주고 있다는 자괴감 때문에 채널을 돌리고 싶었죠”(50대 여)라는 반응도 있었다.

부동산에 대한 불만은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평생을 모아도 아파트 한 채를 살 수 없구나 하는 그 상실감…”(30대 여), “정책이란 게 1개를 만들기도 어려운데 27번, 28번 만들었다는 건 그동안 제대로 생각 안 하고 (대충) 만들어왔다는 것이죠”(30대 남), “12평짜리 아파트 찾아가선 애 2명 키운다는 그런 얘기를 하던데 자기들이 결혼해서 12평에 살아보면 그런 말이 나올까 싶은 거죠”(30대 여) 등.

검찰개혁도 마찬가지다. 응답자들은 “개혁은 안 보이고 추미애만 눈에 띄었다”(40대 여)거나 “건들기는 제일 많이 건드리는데 엄한 것만 계속 터진다는 생각이 들었다”(20대 남)고 말했다. “시끄럽기만 엄청 시끄럽고 정작 바뀐 건 모르겠다”(30대 여), “국민은 기본 생계가 흔들리는데 여권은 가상의 적을 세팅해놓고 계속 섀도복싱을 했다”(30대 여)는 답변도 있었다.

일이 터져도 문제가 뭔지도 수습할 줄도 모른다는 지적도 많았다. “실패를 해도 그 사람(장관)을 내버려두는 거예요. 부동산도 그렇고 조국도요. 그러다 일이 커졌죠”(40대 여)라고 지적했다. 또 “(문제가 생기면) 자꾸 편을 가르더라고요. 대통령이 부동산 문제를 적폐라 하고, 의사를 배제하고선 간호사들한테만 수고한다고 그러고”(30대 남)라고 꼬집었다. “윤미향 사건 등이 터지면 사과하지 않고 시간끌기처럼 진행이 된 다음에 무마하려고 해 실망이 컸다”(30대 여)고도 했다.

그런 불만은 차기 대선주자나 남은 1년에 대한 전망에도 투영돼 있었다. “만약 이재명씨가 현 정권에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준다면 뽑겠다”(50대 남성)거나, “윤석열씨가 (현 여권처럼) 뭔가 일을 벌리기보다는 수습하고 안정적으로 갈 것 같아 지지한다”(30대 여성)고 답했다. 정권의 남은 1년 임기에 대해선 “기대하는 건 없고 더 이상 망치지만 말아 달라”(50대 남), “그냥 조용히 있는 게 제일 도와주는 것”(30대 여)이라는 냉소적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보고서가 나왔는데도 여권 인사들이 제대로 읽고 반성이나 하고 있을까 싶다. 읽어도 응답 가운데 현 정권에 우호적인 목소리를 낸 부분에 주목해 안도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실제로 지금 여권은 재보선 뒤 잠시 반성하는 듯 했지만 전당대회에서 강경파가 득세한 뒤부터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180석 가까운 의석을 가진 여당은 내년 대선, 지방선거 결과와 상관없이 2024년까지 입법 주도권을 쥐게 된다. 그런 여당이 국민과 인식의 괴리가 크고, 그런 게 입법에 반영된다면 국민만 불행해질 뿐이다.

지금 여당에 가장 필요한 것은 소수 지지자와의 로맨스가 아니라 다수 국민과 코드를 맞추려는 노력이다. 또 반성은 잠깐 하고 끝낼 일이 아니고, 유권자들이 오케이 할 때까지 해야 하는 것이다. 지난 25일부터 일주일간 전국적으로 민심 청취에 들어간 민주당이 다음 달 1일 ‘대국민 보고’를 하기로 했는데, 이번만큼은 제대로 된 민심 청취 결과가 나오길 기대한다. 민심마저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면 내년 대선에서 진짜 허경영 찍는 사람이 속출할지 모른다.

손병호 논설위원 bhs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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