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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이상한 여의도의 이준석


올해 36세인 이준석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을 두고 ‘0선 중진’이라고 하는 건 이유가 있다. 세대 교체를 내세우지만, 그가 2011년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발탁돼 정치권에 입문한 지가 이미 10년이나 됐기 때문이다. 10년이면 한국에서는 대통령이 두 번 바뀌는 시간이다. 이 전 최고위원과 비슷한 시기에 여의도에 온 이들은 대개 3선 중진 의원이 됐다. 이 전 최고위원이 생물학적으로는 30대지만, 정치적으로는 참신함을 내세울 만한 인물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랬던 그가 드디어 ‘제1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앞두고 각종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고 있어서다. 그가 갑작스러운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건 4·7 재보선 이후 20대 남성(이대남)을 둘러싼 성 대결 구도를 적극 부각시켰기 때문이다. 그는 여당 참패로 끝난 재보선 이후 이대남에게 적극 어필하고, 그들의 지지를 밑천으로 삼았다. 지난 재보선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더불어민주당의 무능·위선과 내로남불,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 등 여러 복합적 요인이 작용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는 이대남의 국민의힘 지지율 하나에 초점을 맞춘 뒤, 여당의 ‘페미니즘 과잉’을 선거 승패 요인으로 단순화한다. 그렇게 젠더 갈등에 올라타 남녀를 갈라치기 한 뒤, 이대남의 열광적 지지로 당권 경쟁의 벼락 스타가 된 것이다.

한 번 궤도를 이탈한 논리는 끝없이 미끄러진다. 이 전 최고위원은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을 비판하며 “민생이 급한 상황에서 최고 실력자를 기용하지 않고 수치적 성 평등에 집착했다”고 말했다. 곧바로 강민진 청년정의당 대표로부터 “조국 전 장관은 여자였냐, 남자였냐”는 돌직구를 맞았다. 성추행의 박 전 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 부동산 내로남불의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과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 모두 남성이다. 하지만 이 전 최고위원은 이들이 ‘남자’라서, 정치 엘리트에 남성 편중이 심각해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비판을 하지는 않는다.

이 전 최고위원은 급기야 정치권의 청년가점제도 없애겠다고 했다. 그는 “젊은 세대에 약속해야 할 것은 개방과 경쟁”이라며 주요 당직에 경쟁선발제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10년 전 정치 경험이 전혀 없는 그가 어떻게 당시 집권당의 비상대책위원이 될 수 있었을까? 비대위원이라는 ‘꽃가마’를 타고 여당 지도부가 된 것은 그도 한때 ‘20대 청년’이었기 때문이다. 자신도 경쟁 없이 발탁됐으면서, 젊은 세대에겐 무한 경쟁을 강조하는 것은 그가 그토록 혐오하는 꼰대들의 ‘사다리 걷어차기’다.

결국 이 전 최고위원이 참신해 보이는 것은 구태의연한 여의도가 낳은 착시 효과다. 선거 참패에도 변화 조짐조차 없는 내로남불 여당, 변변한 대선 주자 하나 없는 제1야당. 그렇게 이상한 여의도에서 영악한 포지션 선점과 노이즈 마케팅, 30대라는 생물학적 나이가 이 전 최고위원을 ‘새 인물’처럼 보이게 만든 것이다. 백인들의 소외감, 민주당과 공화당에 대한 혐오를 자극했던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발자국을 그대로 뒤따라 가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 고무됐는지 이 전 최고위원은 페이스북에 ‘change we can believe in(우리가 믿을 수 있는 변화)’라는 멋진 한마디를 남겼다. ‘변화’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대선 구호이기도 했다. 이 전 최고위원의 롤 모델이 “나는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한 오바마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그에게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나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 총리 같은 젊은 지도자의 잠재력이 보이는 것도 아니다. 내 눈에는 그저 벼락 인기에 도취된 ‘30대 트럼프’가 보일 뿐이다.

임성수 정치부 차장 joyls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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