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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논단] 코인뿐인 희망, 이준석 신드롬을 낳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


‘설마 집도 없이 결혼하려는 거야?’ ‘둘 다 직장 있으니 일해서 살 거야!’ ‘평생 노예처럼 일만 해야 할 걸, 집값은 하늘을 뚫었고, 노동의 가치는 바닥에 떨어졌잖아.’ 기안84의 웹툰 복학왕 ‘인류의 미래’ 편에서 신부 봉지은과 식장에 느닷없이 나타난 옛 남친 김두치 간의 대화다.

암컷과 수컷이 공존하는 달팽이의 모습으로 나타난 두치는 지은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그녀를 자신의 몸 안으로 삼킨다. 한 몸을 공유한 둘은 싸움, 이별, 이혼과 같은 갈등을 넘어 등딱지를 집으로 삼아 초월적 삶을 시작한다.

결혼할 이유를 모르던 수많은 젊은 남녀가 이 새로운 짝짓기를 택하는 판타지 세상, 84년생 기안84가 그리는 미래사회다. 혼자 먹고살기도 힘드니 둘이 합체하는 게 낫고, 집이 몸에 붙어 있으니 집값 걱정 없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거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삼포 세대, 졸도할 만큼 폭등한 집값, 전셋값에 서울을 포기하고 수도권을 전전하는 세대, 바로 우리 청년들이다. 10%도 안 되는 305만원 초봉 일자리 쟁탈 전에 문과와 이과, 남자와 여자가 극한투쟁을 벌이는 나라, 바로 우리나라다.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이동하는 청년 100명 중 2.2명,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옮겨가는 숫자 4.2명. 아뿔싸, 1차 노동시장으로 불리는 ‘번듯한 일자리’ 쟁탈전에서 패한 자들이 ‘패자부활’할 수 있는 가능성은 4%에 불과하다.

코로나가 희망을 짓눌렀던 2020년 응급실 내원 자살 시도자 중 20대 여성은 4607명으로 전체의 20.4%에 달했다. 좋은 일자리가 있었다면, 미래에 대한 자그마한 희망이라도 있었으면, 과연 이들은 스스로 목숨을 거두려 했을까.

코인뿐인 희망, 코인 투자자의 60%가 20대, 30대 청년인 이유다. 그렇다면 수익률은? 작년 신규 투자자 기준으로 수수료를 제외하면 마이너스 1.2%다. 이 와중에 나는 돈 벌 수 있다고 우격다짐하며 오늘도 코인에 몰빵하는 청년들에게 과연 누가 돌 던질 수 있나.

청년들이 일어서고 있다. 희망도 없고 재미도 없는 21세기 헬조선. 꼰대 세대가 만든 잘못된 게임의 규칙을 바꾸고, 그들이 짓밟은 공정을 회복하자. 살아남기 위해 룰브레이커가 되자는 마음가짐이 에너지로 분출하고 있다.

이 폭발적인 에너지가 이준석 신드롬을 만들고 있다. 레전드 정치인들을 가볍게 누르고 40% 이상의 민심과 당심을 한데 모았다. 청년의 기운이 이준석을 감싸 안자 상식적인 국민과 기성세대도 동참하고 있다. 청춘이 정치의 미래란 상식이 발동했다.

기성 정치인들의 반응은 예상대로다. ‘누군가가 의도를 갖고 여론을 흔든다(주호영)’ ‘우리는 장유유서의 문화가 있다(정세균)’ ‘한때 지나가는 바람이다(홍준표).’ 참으로 꼰대스럽다. 한때 서슬 퍼런 독재에 맞서 싸운 기성세대가 왜 청년들의 미움을 받고, 역적 취급을 받는지 절로 공감이 된다.

논평가들의 헛다리 짚기도 가관이다. ‘야당이 변해야 한다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거다’ ‘정권교체의 열망이 이준석에 투영된 거다’는 등등 본질은 이준석이 아니라 기성정치 채찍질이란 거다. 꼰대 냄새 풀풀 난다.

진보와 보수를 넘어 MZ세대가 자신들의 대변자를 찾아 힘을 불어넣고 있는 역사적 풍경, 이것이 이준석 신드롬의 실체다. 4선, 5선 정치인들에게 당당하게 맞짱 뜨고, 이들이 꺼리는 젠더 토론도 마다하지 않는, 빛바랜 공정성을 다시 복원하려는 한 청년의 패기가 국민의 마음을 얻고 있다.

1000만원 세계여행지원금을 지급하고, 1억원 씨앗통장을 개설해주는 것보다 청년들에게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미생’을 탈출하고, 코인 이외의 꿈을 꿀 수 있도록 번듯한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드는 것, 이들의 진짜 바람이다.

더 확실한 방법도 있다. 청년들이 정치를 직접 주관하게 하는 거다. 이념과 지역, 계층을 넘어 ‘청년의, 청년에 의한, 청년을 위한’ 정치를 꿈꾸는 이들의 진정한 대리인을 우리 사회가 비준하는 거다.

이준석이 쏘아 올린 공을 수구 꼰대 정치인들이 경선룰 들이밀며 함부로 걷어찬다면 그 후폭풍은 걷잡을 수 없을 거다. 집값 걱정, 결혼 걱정을 덜기 위해 달팽이로 변신하는 게 뭐가 대수롭냐며 조롱하는 청년의 독기를 이제는 더 이상 막을 수 없다. 이제 솔직히 인정하자. 꼰대의 시대는 갔다고.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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