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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포커스] 공허한 자들의 빈말

김진우 세르모국제연구소 소장 (전 미국 국무부 선임보좌관)


지난 5월 21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은 외교안보 측면에서 미사일지침 종료 성과를 제외하면 실망스럽다. 한·미 공동성명은 대북정책에서 ‘정교하고 실용적인 접근법(calibrated and practical approach)’을 강조했다. 이는 ‘전략적 모호성’과 ‘균형외교’라는 문재인정부의 애매모호한 정책과 그 궤를 같이하고 있을 뿐이다.

많은 사람들은 미국 대북정책이 정권에 따라 바뀐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일방적으로 북한 제재를 완화하거나 비핵화를 철회한 미국 대통령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정권에 따라 전술과 강조하는 부분들은 미세한 차이가 있지만 실무진에서 형성된 정책 일관성은 유지되고 있다. 문제는 그 일관성이란 것이 지속적으로 잘못된 방향을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인사 탓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공동기자회견에서 성 김 국무부 차관보 대행을 대북특별대표로 임명했다. 인사가 정책 그 자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바이든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는 오바마 정부의 복사판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크리스토퍼 힐을 멘토로 둔 성 김은 2008년 영변 원자로 냉각탑 폭파를 지켜본 뒤 “북한 비핵화를 위한 중대한 진전”이라고 자화자찬했다. 하지만 그 당시 핵 전문가들은 그것은 실질적으로 원자로 운영에 미치는 영향이 없기에 비핵화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미국 내 비둘기파들은 그 사건을 북한의 비핵화 신호로 여겼던 것이다.

성 김 대북특사는 앞으로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에게 직접 보고하겠지만 실질적인 영향력을 갖기 위해서는 반드시 내부의 주요 핵심 인물들과 협업하고 조율해야 한다. 그중 한 명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인 제이크 설리번이다. 설리번은 힐러리 클린턴의 측근으로 녹색혁명 지지를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란핵합의(JCPOA) 당시 대가로 현금 지불 방안에 찬성했다. 또한 2016년 미 대선에서 트럼프와 러시아가 공모했다며 트럼프 임기 4년 내내 음모론를 주장하기도 했다. 또 다른 한 명은 웬디 셔먼 국무부 부장관이다. 그녀는 북한, 이란,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관련 ‘유화 정책’에 대하여 이제까지 단 한번도 반대해 본 적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아시아 차르’인 커트 캠벨. 미국 정부에서 대표적으로 과대평가된, 매우 얄팍한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는 중국 공산당, 그리고 바이든 대통령의 아들 헌터 바이든과 친밀한 관계로 이해충돌을 겪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부의 대가다. T. S. 엘리엇은 제1차 세계대전 후 실력 없는 사람들을 “형태 없는 형체, 색 없는 음영, 마비된 힘, 동작 없는 몸짓”의 공허한 군상으로 묘사했다. 현재 바이든 정부의 대북담당 멤버들이 그렇다.

문재인정부의 치명적인 문제점 중 하나는 바로 유화적인 사고방식이다. 북한뿐 아니라 중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처칠이 말한 “유화주의자는 악어가 마지막에는 자신을 잡아먹을 것을 기대하며 악어에게 먹이를 주는 사람이다”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유화정책 추종자들은 주로 행동보다는 포장된 말에 의지한다. 하지만 거친 국제사회에서 국익을 위해 일해야 하는 외교안보 인사들은 때로는 단호하고 강경해야 한다.

얼마 전 테오도로 록신 필리핀 외무장관은 중국을 향해 “꺼져 버려!(GET THE FUCK OUT)”라며 원색적으로 비난한 바 있다. 한국에 록신처럼 대담한 외교부 장관이 있었으면 어떨까 생각한다. 물론 공허한 사람들의 빈말이라도 가끔은 위안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의 의미 없는 텅 빈 말들은 지금의 대한민국 안보에 그저 위협일 뿐이다.

김진우 세르모국제연구소 소장 (전 미국 국무부 선임보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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