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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을새김] ‘샤워실 바보’들의 행진

고세욱 경제부장


‘샤워실에서 더운 물이 빨리 나오게 꼭지를 끝까지 돌렸다가 너무 뜨거워지자 반대로 확 돌렸다. 이번에는 물이 너무 차갑자 다시 방향을 급히 바꿨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자 자유주의 경제학의 대가인 밀턴 프리드먼 교수의 ‘샤워실의 바보’ 이론이다. 정부의 어설픈 정책과 간섭이 반복되면 경기에 해악을 끼친다는 논거로 회자돼 왔다.

프리드먼 경제학은 찬사만큼 비판도 많다. 특히 경제 위기로 정부의 역할이 중요할 때 그의 ‘작은 정부’론은 찬밥 신세 되기 일쑤다. 하지만 15년 전 작고한 프리드먼 교수는 하늘에서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한국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정책 봐라. 내 말이 맞지?”

현 정부 출범 이래 26차례 나온 부동산 대책은 샤워실의 바보 이론을 빛내준 역작(?)이다. 도박도 26차례 하면 한 번은 성공할만 한데 정부는 헛발질만 거듭했다. 결과는 4년간 전국 집값 35% 급등(KB국민은행 기준)이었다. 서울에서는 2배 이상 오른 곳이 허다하다. 4월 재보궐선거 때 부동산 민심이 폭발하자 여당은 부랴부랴 정책 기조를 바꾼다고 법석이다. 그런데 4년의 난맥상이 워낙 심해 내놓는 대책마다 상황이 꼬이는 모양새다.

최근 여당이 폐지키로 한 등록 임대사업자 제도. 다주택자들의 임대사업자 등록 시 보증금 5% 상한, 장기 임차인 거주 보장 등 공적 의무를 지운 대신 세제 혜택을 주는 것이 골자로, 현 정부 들어 혜택이 대폭 확대됐다. 그런데 일부 다주택자들의 배만 불린다는 비난에다 선거에서 패하자 이를 아예 없앤단다.

정책의 일관성·신뢰성을 위해선 부작용이 나타날 경우 중지를 모아 순기능은 살리고 역기능은 개선하는 게 기본이다. 탈선한 일부 임대사업자는 단죄하되 서민 주거안정 기능은 유지하는 게 제도 연착륙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여당은 무 자르는 듯한 조치로 일관, 자칫 지난해 전월세난을 초래한 ‘임대차법’ 혼란 시즌2가 우려된다. 청와대 실세가 임대사업자 활성화 방안을 주도할 때는 아무 말 못하다 뒤늦게 임대사업자를 집값 급등의 원흉처럼 몰아간 것은 몰염치하다.

세종시 특공(아파트 특별공급) 폐지 역시 집권층의 ‘모 아니면 도’식 마인드를 보여줬다. 특공 특혜가 과한 건 맞다. 무주택 및 실거주 공무원 위주로 제도를 운영했어야 했다. 세종시 이주도 하지 않은 관세평가분류원의 특공 이용은 공분을 자아냈다. 하지만 특공이 문제된 건 명백히 여당 인사들의 설익은 ‘세종 천도론’ 때문이다. 지난해 7월 여당에서 뜬금없이 세종 행정수도론을 외치며 2019년 말까지 잠잠하던 집값을 폭등시킨 게 특공 특혜로 번졌다. 원인 제공자인 여당은 사과 한마디 없이 특공 폐지를 강행했다. 세종시 유인 효과로 특공에 암묵적으로 공감하다 여론을 이유로 태세 전환한 것이다. 진영 논리에 취해 열탕·냉탕에만 익숙한 나머지 합리적인 중도(미지근한 물)의 사고를 하는 법을 잊은 듯하다.

이처럼 반성 없이 정책을 뒤집는 것도 문제지만 반성으로 위장하는 작태도 꼴불견이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는 최근 청년 간담회에서 정부가 주도한 최저임금 인상 위주의 소득주도성장(소주성)이 잘못됐다고 사과했다. 신선한 내부 비판으로 여겼지만 웬걸. 며칠 후 소주성 설계자인 홍장표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국내 최고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으로 선임됐다. 정책 실패자의 낙하산 입성에 여당은 말이 없었다. 수도꼭지 방향이 맞나 했더니 고장난 격이다.

프리드먼 교수는 “입만 열면 개혁을 부르짖는 사람들은 남들의 이익을 빙자해 자신의 영달을 추구한다. 그들이 정부를 좌우하면 국민의 경제 복지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의 혜안에 새삼 고개가 숙여진다.

고세욱 경제부장 wk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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