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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총리 ‘국가교육위 해법’이 허무개그가 된 순간

[이도경의 에듀 서치]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더불어민주당이 국가교육위원회를 정권 말기에 강행하려는 움직임을 보인 이후 물어보고 다니는 게 있습니다. “다음 정부의 국정과제와 국가교육위의 정책이 충돌하면 어떤 게 우선권을 갖습니까?”

어떤 게 우선권을 가질까요. 먼저 국정과제의 무게감을 봅시다. 대선 후보들이 결정되면 분야별로 공약이 발표됩니다. 대통령이 결정되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꾸려지면 공약을 토대로 5년 동안 추진할 국정과제들이 정해지죠. 국정과제는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앞으로 5년 동안 국가를 운영하도록 선택받은 이가 바로 그 주권자에게 한 약속입니다. 교육 분야라면 미래 세대를 어떻게 키워낼지에 해당할 겁니다.

국가교육위를 봅시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었고 교육 분야 국정과제입니다. 정권을 초월하는 교육 정책을 만드는 국가교육위 같은 기구가 필요하다는 공감대는 이미 충분합니다. 문 대통령 말고도 여러 대선주자들이 공약으로 내걸기도 했었죠. 100년 대계라는 교육 정책이 정권마다 혹은 장관마다 조변석개하는 통에 학생·학부모 고통이 가중되고 “인재로 먹고사는 나라에서 이래서 쓰겠는가”라는 공감대였습니다.

이런 상황을 가정해봅시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 특혜 입시의혹 사태 등으로 사회 전반에 ‘공정’이 다시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대선에선 누가 더 공정한지 레이스가 펼쳐집니다. 입시 정책도 손을 대겠죠. 정시 확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정시가 진짜 공정한지는 설득력 있는 반론들이 존재하지만 깔끔한 방식이긴 합니다. 결과에 승복하기도 쉽죠. 문 대통령이 조 전 장관 사태로 촉발된 공정성 논란에 정시 확대를 들고 나왔듯, ‘공정 레이스’ 상황에서 정시 확대 카드는 유효한 득표 전략으로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정시 확대를 내건 후보가 당선 됩니다(물론 가정입니다). 새 정권이 국정과제로 설정하면 교육부가 대학들을 움직일 방안을 마련해 청와대에 보고하겠죠. 여느 정권이었다면 물 흐르듯 진행될 겁니다. 하지만 국가교육위가 있다면 얘기가 다릅니다. 대입 정책에 대한 권한은 국가교육위로 넘어간 상태입니다. 국가교육위 멤버 과반은 전 정부에서 임명한 사람이고 문 대통령이 추진하던 고교학점제에 치명적인 정시 확대에 반대합니다. 다시 첫 질문으로 돌아와서 새 정부는 정시 확대를 추진해야 할까요, 말아야 할까요.

만약 국가교육위가 정책을 포기하면 스스로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겁니다. ‘정권 거수기’라면 세금만 축내는 기구일 뿐이죠. 그렇다고 새 정권이 입시 정책 하나 선심 쓰듯 양보할 수 있는 사안도 아닙니다. 입시 정책은 초·중등 교육을 움직이는 ‘열쇠’입니다. 무엇을 가르칠지를 정해놓은 교육과정부터 교원정책까지 연관되지 않은 정책이 없습니다. 교육 정책은 노동과 복지 등 사회 전반과 엮여있는 점도 무시할 수 없죠. 새 정부가 사회정책의 상당 부분을 내려놓는 것인데 이게 주권자의 뜻을 제대로 받드는 일인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여기서 질문이 하나 더 파생됩니다. 교육 정책이 실패했을 때 주권자는 누구를 비난해야 할까요. 지난 정부가 구성해놓은 국가교육위일지 새 정부일지 복잡해집니다. 교원 정책을 볼까요. 만약 국가교육위가 고교학점제 도입을 위해 필요한 교원 수를 결정하더라도 새 대통령이 도와주지 않으면 추진이 불가능합니다. 국가 공무원인 정규 교사 충원은 기획재정부와 행정안전부 승인이 필요합니다. 또 현재 추진 중인 고교 평준화 정책(자사고 폐지 등)도 정부가 시행령을 통해 좌우할 수 있습니다. 고교 평준화 정책에 제동이 걸리면 고교학점제도 타격을 받습니다. 유아교육부터 고등교육에 이르기까지 충돌할 소재가 하나둘이 아니죠.

정답에 가까운 해법이 김부겸 국무총리 입에서 이미 나왔습니다. 지난 18일 총리 취임 뒤 첫 기자간담회에서 “1년 내 제도를 바꾸긴 어렵다. 현 교육부 체제가 갖는 한계가 무엇인지 등 그간 축적한 고민을 정리해 다음 정권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제공하려 한다”고 말했습니다. 차기 정부를 구성할 대선 주자 몫으로 넘기겠다는 말로 들립니다.

너무 늦었다는 얘기인데 국가교육위 추진에 관여해온 사람들로부터 들은 얘기와 맥이 닿아 있습니다. 문재인정부 초반에는 “되도록 빨리”, 조금 지나니까 “집권 3년차가 마지노선”, 이후 “제21대 총선 직후가 데드라인”이라고 했었습니다. 새 정권이 들어서도 국가교육위가 생명력을 가지려면 2년 정도는 교육 정책에서 국민 공감대를 넓히고 차기 대선 주자들과도 교감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국민적 공감대를 이룬 정책’이 국가교육위의 유일한 무기란 걸 알면서도 차일피일 미루다 타이밍 놓친 뒤에 부랴부랴 강행처리하려는 게 지금 집권 세력의 모습으로 보입니다. 내년과 내후년 교육 현장이 어떻게 되든 선거에서 교육 개혁의 성과로 들이밀려는 목적이란 생각을 지우기 어렵네요. 이에 제동을 거는 김 총리의 기자 간담회 발언은 그래서 고개가 끄떡여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김 총리는 말을 주워 담았습니다. 기자가 총리실과 유기홍 국회 교육위원장실에 “이제 추진 않는 것인가”고 문의하고 몇 시간 뒤 총리실에서 입장 자료를 냈는데 “(총리가) 국가교육위법 논의 진전 상황을 보고받지 못한 상태에서 이뤄진 발언” “변함없이 추진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소신이지만 정치적 상황을 고려한 건지, 정말 모르고 한 말인지는 총리 본인과 정권 이너서클만 알겠죠. 다만 질 나쁜 허무개그 한 토막을 본 듯 지저분해진 느낌은 당분간은 지우기 어려울 듯합니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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