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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의 문화스케치] 어떻게든 전달되는 마음


출장이 있어 며칠 집을 비웠더니 현관 앞에 상자가 수북하다. 대부분은 책이다. 내가 구입한 책도 있고 지인이 보내준 책도 있다. 생면부지의 누군가가 보내준 책은 봉투를 유독 오랫동안 들여다보게 된다. 익숙한 이름과 생경한 이름 사이에서, 심리적으로 가까운 지명과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지명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자연스럽게 거기의 마음을 여기로 옮겨준 분들을 떠올린다. 책이 든 상자를 들고 뚜벅뚜벅 계단을 올랐을 분들의 얼굴을, 빈손으로 터덜터덜 계단을 내려갔을 분들의 뒷모습을. 상자 사진을 첨부해 “문 앞에 두고 갑니다”라는 문자가 와 있었다. 별생각 없이 “늘 고맙습니다”라고 답했다. 늘 하는 일이었다.

그날 저녁, 한 신문 기사를 접하고 어안이 벙벙해졌다. 택배를 잘 받았다고 고맙다는 문자를 보내면 오히려 기사님들이 힘들어한다는 내용이었다.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수령이 일상화된 요즘, 마주 보고 고마움을 직접 전할 수 없으니 문자를 남기는 일이 늘어났을 것이다. 그런데 일하다 말고 문자를 확인해야 하는 기사님들에게 이는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라고 한다. 마음은 고마운데 몸이 고달프게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택배 배송 시에는 임시번호가 사용되기 때문에 누가 문자를 보냈는지 알 수도 없다고 했다. 선의가 오롯이 전달되지 못하는 셈이다.

문득 이종철이 쓰고 그린 ‘까대기’(보리, 2019)가 떠올랐다. 예전에 읽었을 때 굉장히 강렬하게 다가왔던 책이다.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가리켜 ‘까대기’라고 부르는데, 책 속에는 현장의 실상이 낱낱이 파헤쳐져 있다. 얼마나 일이 고되면 일하다 하루 만에 도망치게 된다는 말도 들린다. 택배에서 편리함만을 누렸던 내게 택배 상자 이면에 있는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빠른 배송, 당일 배송, 새벽 배송, 특급 배송, 로켓 배송 등에 익숙해진 나머지 택배 배송이 예상보다 조금만 늦어져도 조바심을 내던 내가 부끄러웠다. 집에서 편하게 택배를 받기까지 얼마나 많은 손짓과 발걸음이 있었을까. 한동안 열지 않은 상자를 하릴없이 어루만졌다.

요일마다 물량이 다르고 계절마다 배송하는 물건도 달라진다. 그것이 빨리 소비해야 하는 농수산물이라면 얘기가 또 달라진다. 물류창고에서 집으로 오기까지의 여정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처럼 간단하지 않다. 우리가 으레 누리는 편리와 편의 뒤에는 보이지 않는 손과 발이 있는 셈이다. 오늘 일하지 않으면 내일 당장 생계가 막막해지는 많은 이들이 까대기를 한다. 하루의 절반 이상 시간을 배송 작업하는 데 보내는 사람, 졸린 눈을 비벼가며 화물차를 운전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늘 고맙습니다”라는 의례적인 문자를 보내는 대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골몰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생각만으로도 애틋해지는 동네에 갈 일이 있었다. 5년 만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가던 단골 카페가 그대로 있었다. 더 이상 단골 카페라고 부를 수 없을 테지만, 편한 분위기는 여전했다. 늘 앉던 자리가 비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저 기뻤다. 음료를 시키고 변한 것이 없는지 사방을 둘러보는데 이전에는 없던 어떤 물건이 눈에 띄었다. 냉장고였다. 냉장고 문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다. “기사님들을 위한 냉장고입니다. 카페 운영 시간 동안에만 열리고 닫힙니다. 기사님들 목을 축이고 가세요!” 냉장고 문을 열어보니 생수와 비타민 음료, 자양강장제가 한가득 담겨 있었다.

집에 돌아오니 오늘도 어김없이 택배 상자가 서너 개 있다. 책을 들고 승강기 없는 건물의 4층까지 올라왔을 기사님들의 피로한 표정이 눈앞에 선하다. 이제 곧 여름이 다가올 텐데, 예까지 올라오실 걸 생각하니 아찔하다. 선반을 하나 꺼내 문 앞에 두었다. 내일 외출하기 전, 거기에 비타민 음료를 세워둬야겠다고 다짐했다. 금세 미지근해질 수도 있지만, 외출할 때 두면 그래도 찬 기운이 남아 있을 것 같았다. 종이를 꺼내 문장을 적었다. “기사님들, 늘 고맙습니다. 목 좀 축이고 가세요. 다 드신 병은 선반 아래쪽에 두시면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다음 날 외출하고 돌아오니 택배 상자가 두 개 있었다. 선반에 놓아둔 비타민 음료도 두 개 자취를 감추었다. 상자 두 개와 빈 병 두 개를 들고 들어오는 발걸음이 그렇게 경쾌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전달되는 마음에 대해서 잠시 생각했다. 고마움은 표현돼야 한다.

오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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