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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포럼] 불공정이 아니라 불평등이 문제다

최영기 (한림대 객원교수·전 한국노동연구원장)


공정이 시대정신 반열에 올랐다. 공정사회와 공정경제의 기치를 내걸었던 문재인정부가 4년간 나름대로 애를 썼음에도 공정 이슈가 또다시 시대적 과제로 떠오른 것은 아이러니이자 불행한 일이다. 그 이유를 설명하는 손쉬운 방법은 집권 세력의 내로남불과 불공정한 권력 행사의 여러 사례를 열거하는 것이다. 이런 설명법은 대통령이 바뀌고 권력이 달라지면 바로 고쳐질 문제라는 인식을 깔고 있다. 차라리 문제가 그렇게 간단했으면 좋겠지만 정권만 달라진다고 한창 달아오른 불공정 시비가 끝날 것 같지는 않다. 예를 들면 많은 청년이 불공정 표적으로 삼았던 인천국제공항공사(인국공) 문제만 보더라도 표면적 갈등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절차의 공정성에 관한 것이었지만 문제의 근원은 인국공의 지나친 비정규직 남용에 있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공정성 시비가 꼭 현 정권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라고 해도 핵심 쟁점은 과정의 공정 또는 공정경쟁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정부가 프레임을 그렇게 짰다. ‘과정은 공정할 것’이라는 대통령 언명에 따라 공공기관은 블라인드 채용을 의무화했고 검찰은 부모 찬스나 유력자 청탁에 의한 채용비리에 철퇴를 내렸다. 교육부는 입시 공정성을 높인다며 변수가 많은 수시 전형 비중은 줄이고 수능 점수를 기준으로 줄 세우는 정시 비율을 높이도록 했다. 공정경쟁 지상주의는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에서도 위력을 떨치며 앞으로 각종 선거에 나설 모든 후보는 자격시험을 치게 하겠다는 공약까지 나왔다. 결국 과정의 공정 또는 공정경쟁은 기껏해야 시험 앞에 평등이고 점수에 승복하자는 일시적 봉합일 뿐이다.

우리 사회가 경쟁의 공정성에 갈수록 민감해지는 이유는 세상이 더 불공정해져서가 아니라 좋은 일자리가 줄어들고 취업경쟁이 더 치열해졌기 때문이다. 문제의 초점도 경쟁을 어떻게 더 공정하게 할 것이냐가 아니라 경쟁의 강도를 어떻게 낮출 것이냐에 있다. 인국공의 경우 공항 종사자 1만여명의 10~20%만 정규직으로 채우는 현실은 그대로 두고 정규직 전환의 공정성만 따지고 끝날 일이 아니다. 인국공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출범하며 내부 인력은 최소화하고 보안이나 소방과 같은 필수업무조차 외부 용역에 맡기는 고용 유연화 전략으로 일관했다. 인국공은 비용을 최대한 줄이며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확보했다. 그 명성 덕에 인국공 내부 직원들은 승진도 하고 호봉도 올랐지만 외부 인력은 2~3년 단위로 갱신되는 용역계약에 매달려 불안해하며 정규직과의 격차 확대를 지켜만 봐야 했다. 이는 지난 20년간 한국 노동시장의 불평등한 이중구조가 어떻게 굳어져 왔는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심해지며 청년이나 경력단절여성이 갈 만한 대기업 정규직 일자리는 감소하고 불안정 저임금 일자리는 증가했다.

이런 구조를 방치한 채 채용 절차를 어떻게 한다 해도 대기업 정규직만을 위한 과잉 경쟁은 바뀌지 않고 공정성 시비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현재 진행 중인 기술 진보의 방향으로 보거나 문재인정부가 시도했던 여러 정책의 소극성을 감안할 때 이런 추세가 개선될 것 같지도 않다. 무엇보다 비대면 서비스와 디지털 플랫폼 기업이 발전하며 일자리 양극화는 더 심해지고 좋은 일자리는 더욱 감소할 가능성이 크다. 최저임금 인상이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라는 문재인정부의 정책적 개입도 소리만 요란했을 뿐 구조적 개혁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이를 비판하는 보수 진영도 정규직 해고를 쉽게 해야 비정규직 사용을 줄인다는 원론적 처방만 반복한다. 그렇다고 노동조합에 기대를 걸어볼 수도 없다. 그들은 1987년 이후 투쟁으로 생산직과 사무직 간 제도적 불평등을 무너뜨린 경험이 있지만 외환위기 이후에는 정규직만의 고용안정과 임금인상이라는 기득권에 안주하고 있다. 이들은 오히려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과정에서 채용의 공정성을 따지며 노동시장 통합을 반대하는 쪽에 섰다.

결국 정부의 정책적 개입만이 일자리 양극화의 물꼬를 돌릴 수 있다. 청년들의 공정경쟁 외침에 블라인드 채용이나 비리 근절 또는 정시 확대로만 답하고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취업경쟁을 완화할 수 있는 구조 개혁까지 밀고 나갔어야 한다. 고용 형태와 기업 규모에 따른 임금과 복지, 고용안전망과 교육 훈련의 불평등 구조 자체를 타파하지 않고는 좋은 일자리를 향한 과잉경쟁과 불공정 시비도 끝나지 않는다.

최영기 (한림대 객원교수·전 한국노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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