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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희망의 사람들] “나뭇가지인 줄 알았는데 6·25 전사자 유해… 순간 울컥했죠”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송치영 하사(왼쪽)와 이성민 상병이 지난달 말 강원도 화천 취봉 남쪽 887고지에서 6·25전쟁 전사자 유해를 정성스레 수습하고 있다.

‘퍽, 퍽. 퍽, 퍽.’

정상에 오르니 삽질 소리가 메아리쳤다. 산봉우리 경사면 아래 쭉 늘어선 100여명의 장병들. 그들이 하는 일은 단순하지만, 조심스러워 보였다. 아침부터 늦은 오후까지 종일 삽으로 흙을 파내며 혹시라도 나올 전사자 유해와 유품의 ‘단서’를 발견하는 게 이들의 일이었다. 산 아래 주둔한 7사단 예하 일명 왕자포병대대 소속으로 지난 4월 중순부터 6·25전쟁 전사자 유해 발굴 임무에 투입됐다.

지난달 말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 신읍리 취봉 남쪽 887고지에서 진행되는 유해 발굴 현장을 다녀왔다. 끝없이 이어진 밧줄을 부여잡고 낑낑대며 올라가야 하는 가파른 산길이었다. 정상에서 거대한 태극기와 맞닥뜨렸다. 예기치 않은 장소에서 목격한 태극기는 여기가 숭고한 임무의 현장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이곳은 ‘취봉지구 전투’로 알려진 6·25전쟁 초기 격전지의 하나다. 백암산에서 화천으로 뻗어 내린 취봉(989고지)과 그 아래 887고지, 643고지 등에서 중국군과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특히 중국군 1개 연대가 점령했던 887고지는 1951년 6월 6일부터 9일까지 4일간 국군 1개 대대가 수적 열세 속에 공격을 감행해 번번이 반격에 밀리다 4번째 공격에야 탈환할 수 있었다.

1951년 취봉지구 전투 격전지였던 887고지에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왕자포병대대 장병들과 함께 수습한 전사자 유품들. 중국군과 국군의 유품이 뒤섞여 있다.

국방부의 6·25전쟁 전사자 유해 발굴 사업은 제보를 참고하기도 하지만 이곳처럼 전사(戰史)를 토대로 하는 경우도 많다. 예상은 적중했다. 그날까지 벌써 37구가 발굴됐다. 애초 12구 정도를 목표로 했지만 지금은 4배에 가까운 40여구가 수습될 것으로 예상한다. 그만큼 격전지였다는 얘기다. 유품만 하루 100점씩 나온다고 한다.

유해 발굴은 2단계로 진행된다. 1차로 왕자포병대대 장병들이 산자락 아래부터 위로 올라가며 삽질을 통해 유해 흔적을 찾아낸다. 권모 상병은 유해를 찾아낼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점심시간이 돼 일을 멈추고 올라가려는데 미끄러져 나뭇가지를 잡았습니다. 그게 뽑히며 뼈가 드러났어요. 나뭇가지와 비슷해 던지려는데 동료가 사람의 뼈 같다고 해서 보고했습니다. 허벅지 뼈라는 소리를 듣는데 울컥해졌습니다. 아군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장병들이 유해의 ‘단서’를 발굴한 뒤 국방부 감식단이 전문적으로 수습할 수 있게끔 설정된 출입금지 라인(왼쪽)과 이들의 추가 발굴 작업을 통해 드러난 유해.

이렇게 유해가 하나라도 나오면 추가로 나올 가능성이 큰 만큼 추후의 발굴과 수습 임무는 전문가인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으로 넘어간다. 산비탈 저쪽 편에 경찰통제선과 유사한 노란색 안전테이프가 보였고 그 속에서 파견 나온 감식단원 10여명이 2인 1조로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이들은 대학에서 고고학이나 인류학 등 관련 분야를 전공한 경우가 많다. ‘6·25 전사자 유해 발굴/ 출입금지’라고 쓰인 안전테이프 안에서 작업에 여념이 없는 이장원 일병과 최윤성 하사도 전공을 살려 이 업무에 자원했다. 다른 쪽에선 송치영 하사와 이성민 상병이 짝을 이뤄 일하고 있었다. 주변엔 호미, 넓은 붓, 대칼 등의 도구가 널려 있었다. 조심스레 흙덩이를 긁어낸 뒤 붓으로 살살 흙을 털어내자 사람 뼈가 드러났다. 작업 과정은 고고학 유적지 발굴과 다르지 않아 보였다. 국군인지 중국군인지 누구의 것인지는 아직 모른다. 중국군 밥그릇, 군화 밑창과 중국제 만년필 뚜껑, ‘항미원조’라 쓰인 훈장, 화기류와 똑딱단추…. 피아가 뒤섞인 채 유해와 함께 나온 유품들이 격전의 현장을 증언하는 듯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발굴1과 오승래 발굴팀장은 “유품 등을 통해 피아 판정을 해서 국군으로 추정되면 감식단 추모 공간에 우선모신다. DNA 매칭 작업을 통해 신원이 확인되면 유가족 품으로 보낸다”며 “만약 북한군으로 판정되면 파주 적군 묘지에 매장하고, 중국군으로 판정되면 매년 중국으로 송환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전쟁 당시 취봉지구 전투 격전지였던 887고지에서 전사자 유해 수습에 참여한 7사단 포병여단 왕자포병대대 장병들. 왼쪽부터 일병 서주영, 상병 권형인 이상현, 일병 이경환, 상병 김학림.

유해 발굴 사업은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전쟁 후 반세기가 흐른 2000년 4월에야 6·25전쟁 50주년 기념사업으로 시작했다. 6·25전쟁 당시 조국을 위해 산화했으나 수습되지 못한 유해는 13만3000여구에 달했다. 지금까지 1만2500여구를 수습했고 이 가운데 국군으로 확인된 것은 1만여구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신원이 확인돼 가족 품으로 돌아간 국군 유해는 5월 말 현재 164명에 그친다. 신원확인율이 1% 남짓으로 저조한 셈이다. 신원확인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유가족으로부터 채취한 DNA 시료 데이터베이스(DB)를 늘려야 한다.

4대 허욱구 단장이 2019년 취임한 이후에는 신원 확인을 위한 DB 확충에 방점을 찍고 유가족관리과 탐문팀을 1개 팀 10명에서 4개 팀 35명으로 대폭 늘렸다. 탐문팀은 유가족을 찾아 전국을 누볐다. 가정을 방문하고 마을회관도 찾아 수소문했다. 덕분에 유가족 DNA 시료 DB는 4만7000여건으로 4배 이상 늘었다.

지난달 30일에도 강원도 양구 백석산 전투 현장에서 발굴된 고 윤덕용·강성기 일병의 신원이 확인돼 각각 가족 품으로 귀환했다. 유가족의 유전자 시료 제공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왕자포병대대 이기송 대대장은 “유해를 한 구라도 더 찾아 이들도 모두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후원: 문화체육관광부·한국관광공사

화천=글 손영옥 문화전문기자·사진 변순철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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