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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에서] 결백 호소인들의 ‘진실’과 ‘시간’

지호일 정치부 차장


사진 한 컷을 보고 있다. 때는 2015년 8월 24일, 장소는 서울구치소 앞이다. 주인공은 한명숙 전 국무총리. 검은색 정장 차림에 두 손으로 순결을 뜻하는 백합꽃 다발을 들었다. 지금은 정권의 강자들이 된 당시 야당 정치인들이 침통한 표정으로 그 곁을 둘러섰다. “저는 결백하다. 그래서 저는 당당하다.” 구치소 문턱을 넘는 순간까지 한 전 총리는 대법원이 내린 유죄 판결을 부정했다. 2년의 수감 생활을 마치고 출소하는 날에도 그는 백합꽃을 쥐고 “새로운 세상을 드디어 만나게 됐다”고 외쳤다.

그 후로 4년 가까이 흐른 지난달 한 전 총리가 불쑥 자서전 출간을 예고했다. ‘한명숙의 진실’이란 제목을 붙였다. 서문에서 그는 “난 결백하다. 그리고 그것은 진실이다”고 했다. 박제해 뒀던 백합을 다시 내밀 듯 말이다. 이달 말 출간이 예정된 책은 과거의 잘못을 부인하고 변명하는 주장으로 채워져 있을 터다. 이미 책 소개글에서 “검찰이 한명숙 재판의 증언을 조작했다는 여러 증거가 드러났지만 진실은 번번이 덮였다”고 하니.

유죄 선고의 결정적 근거는 증언이 아니라 물증이었지만 애초 그건 중요하지 않다. 여동생 전세금으로 지급된 한만호씨의 1억원짜리 수표, 한 전 총리 보좌관이 검정 비닐봉지에 담아 한씨에게 돌려준 2억원 따위의 입증된 물증은 ‘조작 재판의 희생양’이라는 프레임 속에서 처음부터 무용지물이다.

얼마 전에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회고록 ‘조국의 시간’을 내놨다. 출간은 자유지만 배우자가 징역 4년을 선고받아 감옥에 있고, 자신도 11개 혐의를 달고 1심 재판이 진행 중인 때에 이 무슨 시추에이션인지. 더욱이 ‘형사소송법 제148조’를 되뇌며 법정 변론 기회를 스스로 차버린 그 아니었나.

“불씨는 아직 꺼지지 않았다”더니 과연 조 전 장관의 책은 이 사회에 불길이 번지도록 풀무질을 하는 중이다. 당장 집권 여당이 요동치고, 화들짝 놀란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대국민 사과를 하고도 안팎에서 날아든 돌을 맞아야 했다. 그러니 “정치 활동이 아니다”는 조 전 장관의 강한 부인은 외려 “정치를 하고 싶다”는 몸부림으로 보일 정도다.

‘한명숙의 진실’과 ‘조국의 시간’은 동일 선상에 있다. 둘 다 검찰과 언론을 원망과 원성의 좌표로 찍는다. 여권의 마지막 개혁 과제로 밀어붙이는 대상들이다. 책 출간 시점을 민주당 대선 후보 선출 경선이 다가오는 때로 정한 점도 의미심장하다. 대선 주자들에게 ‘당신은 어느 쪽에 설 것인가’ ‘나를 버리고 갈 수 있겠나’라고 묻는 것 같지 않나. 그 효과는 친문 진영 지원이 다급한 후보들의 즉각적 호응으로 확인됐다.

두 책은 참을 수 없는 나르시시즘의 산물이다. 두 저자는 특정 집단의 표상 같은 존재다. ‘친노의 대모’ ‘친문의 정신적 지주’ 반열에서 위선과 거짓의 상징으로 추락하는 걸 못 견뎌할 수 있다. 최소한 그들을 추앙하는 이들에게 그들은 언제까지나 정의로운 투사여야 한다. 이를 위해 “나는 그렇게 살지 않았다” “검찰 개혁이라는 사명을 수행하다 비운을 만났다”는 명령어를 넣어 인위의 기억을 계속 프로그래밍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들 ‘결백 호소인’은 보통의 성찰과 반성, 외부 교감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 상태로 보인다. 신원(伸冤)에 대한 집착이 자기애와 현실 간의 간극을 더 벌리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래서 이들이 글로 적는 진실은 ‘내로남불 제국’을 벗어나지 못한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조지 버나드쇼는 일찍이 이런 부류에 담긴 위선을 비꼬았다. “모든 자서전은 거짓말이다. 무의식적 거짓말이 아니라 고의적 거짓말이라는 뜻이다.”

지호일 정치부 차장 blue5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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