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피니언 > 칼럼 > 가리사니

[가리사니] 11월, 우리가 마주할 풍경


지난 2월 26일 시작한 국내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100일을 넘겼다. 백신 1차 접종률은 6일 기준 전체 인구의 14.8%다. 백신 접종이 본격화하면서 코로나19 확진자 중 사망자 비율인 치명률은 1.3%대까지 떨어졌다. 백신 수급이 원활하면 올해 11월에 집단면역을 형성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주변에서도 백신을 맞는 이들이 속속 나온다. 가장 먼저 접한 사례는 사회필수인력으로 분류되는 소방공무원 친동생이었다. 매일같이 병원에 드나들고, 하루에도 수십명과 접촉하는 그에게 백신 접종은 필수였다. 만 30세 미만인 그는 지난 4월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을 맞은 뒤 며칠을 근육통과 두통, 발열로 고생했다. 국내외에서 AZ 백신을 맞고 희귀 혈전증을 앓았다는 사례가 나온 터라 꽤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는 큰 문제 없이 보통의 상태를 회복했다.

‘노쇼’ 백신을 맞은 이들도 있었다. 30, 40대인 이들이 백신을 맞은 이유는 하나였다. 가족을 위해서였다. 선배 A씨는 65~74세 고령층 접종 대상인 부모님이 부작용을 걱정하자 고민을 덜어주고자 일찍이 백신을 맞았다.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별일 없을 거라고, 나도 맞았는데 괜찮지 않겠느냐고 부모님을 설득했다. 그에게는 낮은 확률로 겪을지 모르는 부작용보다 자칫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으로 얻게 될 예상치 못할 부모님의 건강 악화가 더 큰 걱정이었다.

또 다른 선배 B씨는 임신부인 아내를 위해 백신을 맞았다. 혹여나 임신 초기인 아내에게 바이러스를 옮기면 어쩌나, 태아는 괜찮을까 하는 걱정에 하루빨리 백신을 맞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백신 부작용이 두렵지 않은 건 아니었다. 일부 국가에서 AZ 백신을 허가하지 않거나, 접종을 보류한 사례들이 발목을 잡았다. 하지만 그는 아내와 아이가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환경을 되도록 빨리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에게 백신 접종은 선택이 될 수 없었다.

지인 C씨는 아픈 부모님을 부양하기 위해 백신 맞기를 선택했다. 자신이 바이러스에 감염되거나 확진자와 접촉하기라도 해서 집을 비운다면, 그동안 부모님은 누가 돌볼 수 있을까 걱정됐다. 더 고민할 것도 없었다. 주변 의료기관에 전화해 잔여 백신 대기 예약을 했고, 연락을 받자마자 백신을 맞으러 갔다. 그는 백신을 맞으니 한결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부모님 건강이 갑자기 나빠지더라도 곁에서 뭐라도 할 수 있는 안정된 상태가 된 것만으로 안심이라고 했다.

그리고 얼마간 나는 부끄러웠다. 내가 백신 맞기를 고민하는 건 오로지 나의 안녕을 위해서였다. 백신을 맞으면 올해 안에는 해외여행을 갈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7월부터는 야외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는데, 괜히 뒤늦게 맞았다가 나만 뒤처지는 것 아닐까 하는 안이한 생각뿐이었다. 백신을 맞았다가 심하게 아프기라도 하면 어쩌나, 곧 여름휴가도 가야 하는데 집에서 앓아 누울 수는 없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보잘것없는 내 고민의 밑바닥엔 오직 초라한 나만이 있었다.

지금이야 마스크 쓰는 게 일상이지만, 코로나19 존재가 막 알려지기 시작한 지난해 초만 해도 마스크 쓰기는 가벼운 권고 수준이었다. 당시에도 대부분은 군말 없이 마스크를 썼고, 자발적으로 진단검사를 받았고, 이윽고 내려진 집합금지 조치도 큰 반발 없이 따랐다. 마음들은 한데 모여 ‘K방역’이라는 하나의 현상이 됐다.

백신 접종을 두고 이전과 같은 공동체 의식을 강제하긴 어렵다. 개인이 느끼는 공포의 정도는 제각각이고, 각자가 겪고 있는 수많은 상황을 무시할 수 없어서다. 다만 우리는 이기적인 선택들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이미 경험했다. 도심 집회에서, 이태원 클럽에서, 종교 시설에서 발생했던 대규모 집단감염이 그랬다. 집단감염과 집단면역은 공동체를 대하는 마음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우리를 위한 마음은 어떻게 작용할까. 11월이 얼마 남지 않았다.

심희정 온라인뉴스부 기자 simcity@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