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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을새김] 꼰대들이 시험을 본다면

이영미 영상센터장


정당에서 공직자를 추천하면서 시험을 본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2030세대를 넘어 야권 심장부인 대구·경북까지 들썩이게 만든 정치적 열광의 주인공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 그의 대표 공약 공직후보자 기초자격시험을 보고 처음에는 황당한 발상이라고 생각했다.

여의도 정치판은 고스펙의 경연장이다. 교수, 판검사, 의사부터 기업가까지 각 분야 전문가가 바글댄다. 이미 수많은 시험을 통과한 최상위 포식자 그룹이다. 그들의 자료 해석과 독해, 표현, 컴퓨터 활용 능력을 평가한다니. 무엇을 위해서? 우리 정치사에서 정치인 자질 논란이 학력 부족 때문이었던 적이 있었나. 정치인의 부족한 말발과 엑셀 능력이 사회 갈등을 심화시킨 기억은? 정치인 독해 능력의 진짜 문제는 의도적 오독이고, 그건 지적 무능이 아니라 욕심과 아집의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 자격시험이 해법일 리가 없다. 현실에서 시험은 모자란 게 아니라 넘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 후보 공약에 열광한다. 특히 청년들이. 시험 과잉의 최대 피해자들이 그런다.

당연히 젊은 세대에게는 그들의 논리가 있다. 이 후보의 공약 소개에 줄줄이 달린 댓글을 읽다, 나는 높든 낮든 나의 허들을 통과한 기성세대인 거구나 깨달았다. 문제를 내는 사람과 시험을 치르는 사람. 허들을 세운 사람과 넘어야 하는 사람. 그 사이에 견고한 벽이 서 있었다. 그러니까 자격시험은 틀렸다는 내가 틀린 건지도 모르겠다. 평가 받고 또 평가 받고 평생에 걸쳐 평가만 받고 있는 청년의 심리적 풍경은 댓글에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정치인들 밤에 독서실에서 돋보기 쓰고 NCS(국가직무능력표준) 컴활(컴퓨터활용능력) 준비하는 거 볼 생각에 벌써 설렌다” “꼰대들 공부할 생각하니 (이준석) 뽑아줘야겠다” “PSAT(공직적격성평가) 한번 보게 하면 끝남” “인성 탈락 나오면 졸잼일 듯” “정치계의 타노스, 국회의원 절반이 사라지겠네” “변비가 치료된 느낌” “점수도 공개해주라” “본격 꼰대들 뚜드려 패기 시작” “가슴이 웅장해진다”…. 이런 것도 있다. “v를 VIP 약자라고 우기고 MS오피스를 왜 MS에서 수의계약하냐고 외치는 국회의원 ㅋㅋㅋ.” 오세훈 서울시장의 원전 문건 주장 논란과 한때 ‘MS은재’로 불렸던 이은재 전 의원의 국정감사 해프닝을 꼬집은 거다.

자격시험을 시험만능주의라고 비판할 수는 있다. 하지만 청년들 눈높이가 달라졌다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그들에게 최대치의 사회적 기준을 맞추도록, 단계마다 미션을 성공해 레벨업하라고 요구한 건 우리들이다. 영리하게 청년의 메신저를 자처한 이 후보는 이제 정치가 한번 맞춰보라고 요구하는 중이다. 사회가 청년에게 취한 딱 그런 태도와 문장으로. ‘평가해볼 테니 열씨미 노오오력해보시라고.’ 제도의 효용성을 논해봐야 소용없다. 꼰대들이 시험 본다는 생각만으로 가슴이 웅장해지는 이 마당에.

개인적으로 이준석이라는 이름은 여성 차별은 없다면서 저출산 해법으로 여권 신장을 선택한 일본을 말하는 앞뒤 안 맞는 반페미니즘 논객으로 남아 있다. 그는 대입 할당제의 유일한 수혜자가 교대 남학생들이라는 사실도, 공무원 할당제 대상 다수가 남자라는 것도 말하지 않는다. 여학생 수학 성적이 낮을 땐 생물학적 열등함으로 해석됐지만, 남학생 평균이 여학생 밑으로 떨어지자 다들 잘못된 교수법을 탓하기 시작했다. 그런 걸 페미니즘은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부르는데 이 후보는 인정할 수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기대는 갖고 있다. 생각은 다르고 정치는 대화니까. 당대표가 된다면 30대 이준석이 청년의 언어를 공론의 장에 통용되는 요구로 번역해내길, 그래서 답 없는 갈등 대신 협상이 시작되기를 기다린다.

이영미 영상센터장 ym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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