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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구 칼럼] 이준석 신드롬이란 정치 자산


신세대의 주눅 들지 않는 모습 여실히 보여준 이준석 바람
솔직·대담하게 탄핵 정당성 주장한 대구 연설은 ‘압권’
경선 어찌 되든 보수 야당과 정치권 전체의 자산이 될 것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1990년생 김연아는 “최선을 다했고 잘했기 때문에 만족한다. 금메달을 목표로 온 게 아니기 때문에 괜찮다”고 소감을 밝혔다. 은퇴를 앞둔 마지막 경기에 편파 판정 시비가 일었지만 그는 게임의 룰을 쿨하게 받아들였다. 그의 인터뷰는 피겨 불모지 출신이면서도 국제대회에서 조금도 주눅 들지 않고 여왕으로 군림했던 새로운 세대의 모습을 재확인시켰다.

89년생 수영선수 박태환과 스피드스케이팅의 이상화도 그랬다. 94년생 스켈레톤의 윤성빈, 92년생 손흥민의 대담한 플레이를 지켜보면 저절로 감탄하게 된다. 한국어로 세계를 향해 거침없이 도전한 BTS도 있다. 그들 세대의 개인주의, 낭비처럼 보이는 소비성향에 선뜻 공감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기성세대는 무기력했던 구한말, 일제 강점과 동족상잔,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 그들이 구김살 없이 성장하도록 기반을 닦았다는 데 자부심을 느낀다.

‘이준석 신드롬’을 지켜보는 심경도 비슷하다. 85년생 이준석 후보가 국민의힘 당 대표 경선에 뛰어들었을 때 의회는 물론 정당 경력도 일천한 그가 바람을 일으킬 것이라고 예상했던 이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초반부터 괄목할 결과를 거두더니 기세가 꺾이지 않는다. 솔직하고 대담한 화법에서 통쾌함을 느끼며 새로운 기대를 갖는 국민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이 후보는 지난 3일 대구 지역 합동연설회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문제에 대해 돌직구를 날렸다. 그는 “저를 영입한 박 전 대통령에게 감사하다”며 “하지만 호가호위하는 사람들을 배척하지 못해 국정농단 사태가 발생했고, 탄핵은 정당했다고 생각한다”고 선언했다. 이어 “탄핵에 대한 제 복잡한 입장이 정치적으로 공존할 수 있다면 우리는 큰 통합을 이룰 수 있다”며 자신의 생각을 대구·경북이 품어달라고 호소했다. 박 전 대통령이 15대부터 내리 국회의원 5선을 했고 보수의 본고장이라고 일컬어지는 지역 연단에 서서 탄핵이 불가피했음을 외친 것은 기성의 정치 셈법으로는 가당치 않은 일이다. 탄핵 문제를 역사의 몫으로 넘기고 ‘탄핵의 강을 건너자’는 주장도 건너뛰었다. 보수 진영을 사분오열시키고 중도로의 확장을 가로막는 핵심이 탄핵 논란이며, 이에 대한 다른 입장들을 포용함으로써 분열을 극복하는 전략적 행동에 나설 것을 담대하게 호소했다.

대구 연설은 그에게 득이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다. 본경선 반영률 70%인 국민의힘 당원 투표에서 찬반이 엇갈릴 것이다. 30대 젊은 정치인에게 당 운영을 한번 맡겨 보자는 쪽이 우세할지, 그래도 연륜 있는 인물이 대선 경선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게 옳다는 선택이 다수일지 속단하기 어렵다. 정치 철학이나 비전이 충분히 알려지지 않은 젊은 대표가 정치의 ABC만 알아도 하지 않을 ‘뻘짓’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다. 반면 지금 필요한 것은 그릇을 깨뜨리는 실수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새로운 비전과 변혁을 실천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판단도 가능할 것이다. 내용이 넘쳐흘러 틀을 바꾸는 변화를 지향하는 게 보수다. 하지만 틀이 바뀌면 담기는 내용이 혁명적으로 바뀔 것이라는 기대도 만만찮음이 이번 경선 과정에서 확인되고 있다.

이준석 현상은 보수 야당이 그에 어울리지 않는 세대교체의 이슈를 선점해 정치권 전체에 반향을 불러일으킨 드문 사례다. 국민의힘이 그간 보여준 모습은 시대를 따라가는 데 허덕이거나 앞서나간 진보를 끌어내리려 네거티브에 안간힘을 쓰던 게 대부분이다. 이준석은 보수 정당이 새로운 트렌드를 형성해 국민의 관심을 결집시키고 정치권 전체의 변화를 주도하는 생산적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처음으로 보여줬다.

11일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예단하기 어렵다. 이준석의 실험을 보수 정당이 흔쾌히 혹은 마지못해 허락할 수도 혹은 거부할 수도 있다. 결과가 어찌 되든 보수 야당 내부에도 혁신의 갈급증이 상존함이 드러났다. 이 후보가 선택을 받지 못하더라도 혁신의 요구는 계속 분출할 게 분명하다. 이는 보수 야권에 큰 자산으로 남을 것이고, 당분간 그 중심에 이 후보가 서게 될 것이다. 이준석 신드롬은 여당에도 80년대식 이념과 사고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강한 메시지를 던짐으로써 우리 정치의 의미 있는 자산으로 남게 됐다.

김의구 논설위원 e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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