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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 당신, 이걸 청소라고 한 거야?

김영훈 (연세대 교수·심리학과)


“당신, 이걸 청소라고 한 거야? 그럼 이 식탁에 남아 있는 부스러기는 도대체 뭐야? 당신이 제대로 하는 일이 있기나 해? 걸레 이리 내놔.” “상표 확인했어? 당신, 글을 읽을 줄은 아는 거야? 여기 어디에 아이스티(Ice Tea)라고 쓰여 있는지 한번 보여 줘 봐.” “당신 집안은 원래 그래?”

부부 관계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존 가트맨 교수가 ‘감정 치유’라는 책에서 부부 사이에 대재앙을 일으키는 독설을 소개하며 쓴 예시다. 인간의 지능은 참 대단하다. 우리는 배우자가 어떤 말을 하면 크게 상처받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배운 적도 없는데도 말이다. 기다렸다는 듯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비수를 꽂는다.

“청소를 잘 안 했네. 식탁 위에 부스러기가 여전히 있네”라는 말을 두고 “이걸 청소라고 한 거야? 그럼 이 부스러기는 뭔데?”라는 고차원적인 질문형 말들을 쏟아낸다. 청소 상태가 마음에 안 들었을 때 우리는 ‘청소의 정의’에 관해서 논의(?)하고 ‘부스러기의 존재 이유’에 대해서 토론한다. 더 나아가 “너는 이게 청소 잘한 것이라고 생각하니?”라며 상대의 의견을 되물어보는 전략을 쓰기도 한다.

물론 듣는 사람은 상대방이 ‘청소의 정의’와 ‘부스러기의 존재 이유’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정말 글씨를 몰라서 잘못된 물건을 사 왔을까봐 “당신, 글을 읽을 줄은 알아?”라고 묻지 않는다. 얄밉게 빈정거리고 비아냥대는 것일 뿐이다. 마음을 후벼 파며 인격에 상처를 주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생각보다 많은 부부가 이런 말들을 서로 주고받으며 싸움을 하고 (성공적으로) 서로의 마음속에 상처를 남긴다.

“청소 상태가 엉망이네”와 같은 ‘직접적 불만 표시’보다 “이게 청소한 거야?”라는 ‘간접적 불만 표시’를 더 많이 사용하는 이유는 뭘까? 몇 가지 생존 전략적인 이유가 숨어 있다. 첫째는 간접적 불만 표시가 훨씬 더 치명적인 상처를 주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간접적 불만 표시에는 상대방의 인격과 능력이 열등하다는 뜻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경멸이고 비난이다. 청소 상태에 대한 불만을 넘어서 이런 지경을 만든 상대의 인격을 싸잡아 경멸하는 것이다.

둘째는 이러한 강력한 경멸과 비난이 있어야 차후에 일을 제대로 할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어느 누가 처음부터 이런 경멸과 비난을 사용했겠는가. 몇 번 좋은 말로 타일러 보기도 하고 화도 내봤지만 효과가 없었으니 급기야 인격을 경멸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셋째는 본인의 자존심과 인격을 보호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대놓고 직접 불만을 표현하면 본인의 체면을 잃을 수도 있고 도리어 상대방으로부터 이런 일로 화를 내는 쪼잔하고 속 좁은 사람으로 공격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간접적 방법을 통해 상대방이 나의 불만을 알아차리게 하는 것이 더 전략적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나의 체면도 잃지 않으면서 가장 강력한 상처를 주는 방법이 간접적 경멸이다.

그럼 이러한 전략은 성공할 수 있을까? 반은 성공이고 반은 실패다. 상대 배우자에게 강력한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는 성공이다. 하지만 인격적 경멸과 비난이 (기대처럼) 배우자의 행동을 변화시키지는 못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간접적 불만 표시인 경멸과 비난은 상대 배우자에게 강한 반감만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많은 연구 결과에 의하면 오히려 직접적 불만 표현이 행동 수정에 도움이 되고 장기적으로는 부부 관계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비난과 경멸을 뜨겁게(?) 사용하고 싶을 때 명심하자. 아무런 효과가 없고 관계만 더 나빠진다는 것을.

김영훈 (연세대 교수·심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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