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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동철 칼럼] 남의 돈으로 생색내는 정권


문재인정부 출범 4년 만에
국가 채무 300조원이나 늘어
이전 정부들보다 가파른 증가
재정 건전성 악화 우려 커져

여권은 또 전 국민 재난지원금
포함된 추경 밀어붙일 태세

후속 정부나 미래 세대에 부담
떠넘기는 무책임한 짓 멈추고
증세 통해 재원 마련하든지
씀씀이 줄이든지 해야

집안 살림은 넉넉하지 않은데 가족들은 사거나 하고 싶은 게 많은 눈치다. 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더라도 책임감 있는 가장이라면 그럴 수 없다는 걸 안다. 가족들의 이해를 구하든지, 아니면 돈을 더 벌어오든지 해야 한다. 이런 현실을 잊고 무턱대고 빚을 내 가족들이 원하는 걸 들어준다면, 그런 가장을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겁도 없이 빚잔치하고 있네, 나중에 어쩌려고 저러냐며 혀를 끌끌 찰 것이다.

나라 살림살이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게다. 지출(세출) 규모를 정할 때 수입(세입)을 고려해야 하고 갚을 자신이 없으면 빚내는 걸 자제해야 한다. 그래야 국가 재정이 지속 가능할 수 있다.

문재인정부는 어떤가. 지난 4년을 돌아보면 앞서 언급한 무책임한 가장을 떠올리게 된다. 출범한 2017년 660조원이던 국가 채무가 올 연말엔 966조원이 될 전망이다. 나랏빚이 4년 만에 300조원 불어나는 것이다. 기획재정부가 지난해 발표한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국가 채무는 내년에는 1070조원이 된다. 정부가 적자를 메워줘야 하는 공무원·군인연금과 공기업 부채 등 잠재적 부채를 합치면 빚은 훨씬 많다.

코로나19 사태로 재정 수요가 늘어난 요인이 있지만 그것이 채무 급증의 불가피성을 정당화할 수 없다. IMF 외환위기를 극복한 김대중정부의 채무 증가액은 85조원, 전 세계를 위기로 몰아넣은 금융위기를 헤쳐 나와야 했던 이명박정부의 증가액은 181조원이었다. 경제 규모가 커졌다는 걸 감안해도 현 정부에서의 채무 증가는 너무 가파르다. 씀씀이가 헤펐다는 것에서 원인을 찾을 수밖에 없다. 현 정부는 확장 재정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매년 예산을 대폭 늘려왔다. 2017년 400조원이던 본예산을 지난해 512조원, 올해는 558조원으로 늘렸고 추가경정예산도 수시로 편성했다. 세입보다 세출이 더 많아 정부 재정은 매년 적자였고 올해는 사회보장성기금 수지를 제외한 관리재정 수지 적자가 112조원(2차 추경 제외)에 달할 전망이다.

사회안전망 확충, 소득 양극화 개선, 코로나 위기 대응 등을 위해 재정 투입을 확대해 온 정부의 정책 방향이 잘못됐다고 할 수는 없다. 불황기에는 정부가 빚을 내서라도 취약계층을 지원하고 경기 회복 모멘텀을 마련해야 한다. 확장 재정의 순기능이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국가 채무는 언젠가, 누군가는 갚아야 한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도 문재인정부는 채무 급증에 대한 위기의식이 없어 보인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적어도 내년까지는 경기의 확실한 반등과 코로나 격차 해소를 위해 확장 재정 기조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큰 폭으로 증가한 추가 세수를 활용한 추가적인 재정 투입 가능성을 열어둬야 하겠다”고도 했다. 재임 중 빚이 300조원 늘어난 것에 대한 책임감은 찾을 수 없다. 재정 당국은 올해 추가 세수가 32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는데 그렇다고 재정을 ‘펑펑’ 쓸 상황이 아니다. 세금이 더 걷히면 꼭 필요한 곳에만 쓰고 나머지는 빚을 갚는 방안도 있을 텐데 그럴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더불어민주당은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포함한 30조원대 추경을 편성할 태세다. 나랏빚이 불어나든 말든 재정을 마음껏 쓸 테니 뒷감당은 다음 정부가 하라는 태도다.

씀씀이를 줄이라는 지적을 달가워할 정부는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국가의 미래를 위해 해야 할 일이라면 감당하는 게 국민으로부터 국정을 위임 받은 집권 세력이 취해야 할 올바른 자세다. 지금이 긴축을 해야 할 때라는 말이 아니다.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해, 취약계층 보호를 위해 필요한 돈은 쓰더라도 낭비 요인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와 민주당은 이에 얼마나 부응하고 있는지 자문해 보길 바란다.

미국 독일 이탈리아 등 다른 나라들은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불어난 재정 적자를 줄이기 위해 증세를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문재인정부는 인기 없고 반발이 예상되는 증세에 관심이 없다. 증세할 자신이 없으면 씀씀이라도 줄여야 할 텐데, 그것도 아니다. 미래 세대와 국가 재정에 큰 부담이 될 국민연금, 공무원·군인연금 개혁은 아예 손을 놓았다. 부담을 다음 정부와 미래 세대에 떠넘기는 건 무책임하다. 여권 유력 대선 주자들도 그다지 다르지 않다. 국민들 듣기 좋아하는 돈 풀기 공약만 쏟아내지 재원 대책은 엉성하기 짝이 없다. 그저 암담할 따름이다.

라동철 논설위원 rdchu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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