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피니언 > 칼럼 > 태원준칼럼

[태원준 칼럼] 룩셈부르크가 달에 가려는 이유


아르테미스 프로젝트 뛰어든
인구 60만의 작은 나라
영화 같은 우주 광산업에서
미래 먹거리를 찾아가고 있다

세계 1위 소득의 부자나라도
미래세대를 위해서는
이토록 치열하고 절박하게
먼 곳을 내다보며 준비한다

‘마션’에서 우주비행사의 화성 생존기를 그렸던 소설가 앤디 위어는 두 번째 작품의 무대로 달을 택했다. 그가 상상한 2087년의 달에는 아르테미스란 도시가 건설돼 있다. 인구 2000명이 거주하는 공간에서 음모에 휘말린 달 주민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리스신화의 달의 여신 이름을 따온 소설 ‘아르테미스’가 2017년 출간되고 몇 달 뒤, 나사(미국 항공우주국)는 ‘아르테미스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2024년 인간을 달에 보내 기지를 건설하고, 2030년까지 화성에 유인 탐사선을 보내기로 했다. 위어의 두 소설은 점차 현실이 돼가는 중이다.

이 프로젝트에 맞춰 미국은 ‘아르테미스 협정’을 추진했다. 지난해 10월 열세 가지 우주 탐사 원칙이 담긴 문안에7개국이 서명했다(지금은 11개국으로 늘었다). 영국 일본 캐나다 호주 등 아르테미스 프로젝트에 뛰어든 국가 명단에서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 건 룩셈부르크였다. 인구 60만명의 작은 나라가 우주로 가는 대열에 가장 먼저 합류했다. 조세회피처로 부를 쌓아 금융업이 국내총생산의 35%를 차지하는 이 소국(小國)은 왜 달에 가려는 것일까.

영화 ‘아바타’를 만든 제임스 캐머런 감독은 2012년 벤처기업 플래니터리 리소시스(PR)에 투자했다. ‘아바타’는 판도라 행성에서 광물을 캐려는 인간과 원주민의 갈등을 그렸는데, 이 회사가 바로 그렇게 우주에서 광산업을 하겠다고 뛰어들었다. 지구와 가까운 궤도의 소행성은 1만6000개쯤 있다. 니켈 백금 이리듐 같은 희소광물이 풍부하다고 알려졌다. 2015년 지구에 근접한 소행성 2011-UW158은 백금이 1억t가량 매장돼 채굴 가치가 5000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PR은 당시 탐사선 아키드-3를 우주정거장에 보내 이 소행성을 관찰했고, 채굴용 무인로봇 개발에 착수했다.

캐머런의 상상을 현실로 만들려는 우주광산업이 등장하자 룩셈부르크 정부는 진지하게 반응했다. 2016년 경제부총리가 ‘우주자원 이니셔티브’를 발표하며 뛰어들었다. 곧바로 330억원을 투자해 룩셈부르크 정부는 PR의 최대주주가 됐다. 유사업체 딥스페이스 인더스트리에도 투자했고, 두 회사는 룩셈부르크에 유럽 지부를 차렸다. 2017년에는 룩셈부르크에 주소지를 둔 사업자면 누구나 우주에서 확보한 자원의 소유권을 인정해주는 법률을 만들었다. 2018년 룩셈부르크우주국도 창설했다. 현재 우주벤처기업 40개와 유관기업 수백 개가 룩셈부르크에 터를 잡고 있다.

프랑스와 독일 사이에서 농사지으며 가난하게 살던 룩셈부르크는 19세기 철광산이 발견되면서 변신을 시작했다. 산업혁명기와 맞물려 세계 최대 철강업체를 가진 제철 강국으로 떠올랐다. 그 철로 100년을 먹고살다 20세기 중반 철광이 고갈되려 하자 금융에 눈을 돌렸다. 스위스를 벤치마킹해 은행을 키웠다. 그 작은 나라에 160개 넘는 은행이 있고, 낮은 세율을 찾아간 다국적기업 4만개가 계좌를 개설했다. 그렇게 금융국가로 또 반세기를 살아왔는데 2008년 세계 금융 위기가 터졌다. 휘청거리는 경제를 보면서 다시 먹거리를 찾아 나섰고, 8년의 모색 끝에 이런 결론에 이르렀다. “우리가 한때 잘했던 광산업을 다시 하자. 그런데 우주에서 하자.”

광산으로 돈을 번 노하우, 해외 기업을 끌어들여 1인당 소득 10만 달러를 일군 노하우를 합쳐 우주산업의 실리콘밸리가 되려 한다. 골드만삭스는 억만장자를 넘어선 인류 첫 조만장자(자산 1조 달러)는 우주광산업에서 나올 거라고 전망했다. 그렇게 되려면 ‘아르테미스’ 배경인 2080년대는 돼야 할지 모르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많은 기업과 투자가 룩셈부르크에 몰려 미래세대의 먹거리가 될 것으로 그들은 믿고 있다.

이런 청사진을 그린 룩셈부르크에 아르테미스 프로젝트는 절호의 기회였다. 소행성보다 접근이 수월한 ‘달 광산’ 가능성이 열렸고, 우주자원 활용을 명시한 협정 덕에 법적 기반도 생겼다. 작은 나라이니 먼저 혁신해야 살아남는다는 생각, 세계 1위 소득을 가졌지만 미래는 지금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 이 나라를 ‘벤처국가’로 만들었다. 우리보다 세 배 잘사는 부자 나라가 살아가는 방식은 이렇게 치열하고, 미래세대를 염려하는 그 기성세대의 조바심은 이렇게 절박하다. 한국도 최근 아르테미스 협정에 서명했다. 아르테미스 프로젝트를 통해 룩셈부르크와 접할 기회가 있다면 그들이 생각하고 일하는 방식을 잘 관찰하면 좋겠다. 특히 미래를 준비하는 그들의 자세를.

태원준 편집국 부국장 wjtae@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