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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포커스] 바이든의 비스포크 외교정책

박원곤(이화여대 교수·북한학과)


지난달 ‘한반도포커스’ 칼럼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기대보다는 우려가 크다는 전망을 한 바 있다. 결론적으로 틀렸다. 문재인정부는 많은 이의 예상을 깨고 미국과 가치·규범·제도를 공유한 결과를 내놓았다. 특히 조 바이든 행정부가 전력투구하는 반중 전선에 사실상 동참하는 여러 합의를 체결했다.

그럼에도 문재인정부가 대중 정책의 기조를 바꾼 것은 결코 아니다. 중국은 한·미 정상회담 직후 “내정간섭 말라”고 반발했지만, 한국 정부 고위 당국자들은 앞다퉈 한·미 합의가 중국을 겨냥한 것이 아님을 밝힌 바 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일까. 문재인정부가 미·중 사이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여전히 유지하는 정책을 고수하는데 한·미 정상회담에선 사실상 대중 견제에 동참한 상황을 복기할 필요가 있다.

바이든의 외교·안보팀은 절치부심했다. 대부분이 버락 오바마 행정부 8년을 함께하면서 미국 예외주의 대신 전 지구적 상호 의존 전략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는 평가에 시달렸다. 이후 지난 4년간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트럼피즘의 광풍을 목격했다. 이들은 트럼프 현상을 보면서 세 가지 대외 정책 접근 방안을 마련했다. 첫째, 정당성을 강조한다. 세계는 미국 주도의 질서를 통해 평화와 번영을 이뤘다는 역사적 경험과 가치를 앞세우면서 중국이 영토 모험주의와 경제 강압을 통해 질서를 파괴한다고 주장한다. 대부분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동맹국이 거부하기 힘든 명분이다.

둘째, 세력 균형을 시도한다. 헨리 키신저로 대표되는 공화당 전략가가 선호하는 방법을 바이든 외교팀은 과감히 수용했다. 인도·태평양 지역 동맹 강화를 통해 대중 세력 균형을 미국에 유리하게 끌어가려 한다. 지난 3월 ‘2+2 회의’ 직전 미국은 “전력승수”라는 개념을 소개한 바 있다. 기존 부대 특성을 최대한 살리면 숫자 이상의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군사 용어다. 한국 일본 호주 등 핵심 동맹국이 가진 이점을 활용해 세력 균형을 달성하겠다는 의미다.

끝으로 맞춤형이라는 의미의 비스포크식 접근이다. 민주당은 유엔과 같은 거대 국제기구를 통한 제도적 접근을 선호해 왔다. 그러나 자국 우선주의가 강화되는 현시점에는 더 유연하고 실질적이며 기능적인 소규모 협의체 혹은 양자 합의가 유용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부연하면 미국이 종합선물세트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동맹국·우호국이 개별 품목을 쇼핑하는 형태이다. 특정한 의제에 비용을 지불하면 지분을 인정한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세 가지 접근이 다 적용됐다. 자유민주주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국제사회의 규칙을 강조하면서 여기에 반하는 중국의 태도를 문제시 삼는 바이든 정부의 접근을 한국이 거부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세력 균형 측면에서 동맹을 맺고 있는 한국에 역내 역할을 요청한 것에 대해서도 한국은 일정 수준 인정해야 했을 것이다. 한국이 기술 경쟁력을 보유한 이동통신, 반도체, 배터리 등의 분야에서 미국과 함께 새로운 표준을 만들고 공급망을 재편하자는 맞춤형 접근은 한국의 산업 경쟁력 측면에서라도 수용해야 했을 것이다. 문재인정부는 전략 기조를 수정하지 않았지만 바이든 팀의 정교하고 섬세한 접근에 넘어간 것이다.

앞으로 최소 4년, 바이든 외교팀의 절치부심한 외교 정책은 우격다짐이 아니라 명분과 실리를 제공하면서 한국에 파고들 것이다. 한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고 이익의 균형추를 합리적으로 판단한다면 전략적 모호성은 소멸할 것이다. 이제는 자유주의적 국제 질서를 본질적으로 수용할 수 없는 국가의 반발에 대한 대응에 초점을 맞출 때다.

박원곤(이화여대 교수·북한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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