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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탈한입일’

이흥우 논설위원


일본은 조선과 청에 비해 근대화가 빨랐다. 메이지유신으로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근대화 길에 들어선 일본은 자신을 아시아가 아닌 유럽의 일원으로 여겼다. 메이지유신 이래 일본의 국가적 목표는 탈아입구(脫亞入歐)였다. 아시아를 벗어나 유럽에 편입된다는 것으로 동양에선 일본과 견줄 나라가 없다는 오만함의 발로였다. 탈아입구는 일본 제국주의를 정당화하고 조선 병탄을 합리화하는 토대가 됐다.

패전 후에도 이러한 기조는 우익을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아시아 유일의 G7으로서 일본을 서방의 일원으로 생각하는 일본인이 적잖다. 지정학적으로 아시아에 위치할 뿐 민주주의 성숙도와 제도면에서 서구와 유사하다는 게다. 우익의 기억 속엔 동양에선 일본이 본받을 나라가 없다는 우월감이 뿌리 깊게 박혀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여러 분야에서 한·일역전 현상이 일어나면서 우익들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그 반작용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혐한론이다. 혐한론은 상처난 일본의 자존심을 자위하기 위한 극우의 발악에 다름 아니다.

며칠 전 일본 극우 주장과 궤를 같이하는 국내 법원 판결이 있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 김양호 재판장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85명이 16개 일본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일본 극우의 잣대로 각하했다. 소를 받아들일 경우 ‘자유민주주의라는 헌법적 가치를 공유하는 서방세력의 대표국가들 중 하나인 일본국과의 관계가 훼손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을 서방의 대표국가로 여기는 일본 극우 생각과 판박이다.

김 판사는 ‘대한민국이 청구권협정으로 얻은 외화는 한강의 기적이라고 평가되는 세계 경제사에 기록되는 눈부신 경제 성장에 큰 기여를 하게 된다’고도 판결문에 적시했다. 뿔난 시민들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몰려가 13일 현재 30만명 넘게 그의 탄핵을 요구했다. 이쯤 되면 일본 극우단체 대변인으로 직업을 바꾸는 게 백 번 천 번 나을 듯하다. 김 판사에게 ‘탈한입일(脫韓入日)’을 권한다.

이흥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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