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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풍경화] ‘좋아요’만 좋아했다면

봉달호 작가·편의점주


책은 절반쯤 ‘편집’이 좌우하는 것 같다. 같은 원고라도 어떤 편집자를 만났느냐에 따라 방향과 색깔이 달라진다. 에세이는 더욱 그렇다. 도토리 같은 글을 모아 출판사에 건넸는데 어떤 편집자가 어떻게 편집했느냐에 따라 상수리나무가 되기도 하고 도토리나무가 되기도 한다. 때로 바오바브나무가 된다. 거기에 마법의 손을 펼치는 인물이 바로 에세이 편집자! 그런 측면에서 나는 완전히 복 많은 사람이다.

알량한 책 광고인 셈이지만 이 지면에 연재한 글을 모으고 다듬어 도톰히 살을 붙여 이번에 책을 펴냈다. 처음 원고를 건넸을 때만 해도 상당히 어둡고 묵직한 책이 나올 줄 알았다. 코로나19라는 기나긴 암흑의 터널을 지나는 가운데 썼던 글이니 대체로 마음은 무거웠고, 억지로 웃으려 노력할수록 쓴웃음밖에 되지 않았다. 초고(草稿)를 읽은 지인들의 평가도 대체로 그랬다. “슬픈 이야기고만.” 그런데 이번에 책이 나와 보내주었더니 놀라 묻는다. “그때 그 원고 맞아?”

많은 독자는 작가가 원고를 보내면 편집자는 맞춤법 정도만 바로잡아 책이 나오는 줄 안다. 독자였던 시절에 나도 그렇게만 알았다. 물론 그러는 경우도 많다지만, 편집자에 따라 개고(改稿) 과정을 겪는다. 원고를 성격별로 분류해 챕터를 구성하고, 거기서 무엇을 내세울 것인지 편집자가 결정한다. 확정된 방향에 따라 개별 원고를 다시 써 달라고 작가에게 요청한다. 유난히 간섭(?)이 많은 편집자가 있다.

이왕 완성했다고 생각한 글을 고쳐야 하다니, 이게 어째 좀 자존심 상하는 일처럼 느껴진다. 그래도 전반적인 방향을 돌아보며 묵묵히 고치다 보면 왜 고치라고 했는지 점차 이해하게 된다. 와, 편집자는 천재로구나 감탄하게 된다. 주제가 새롭게 제시하는 각도에 따라 원고의 시선을 맞추고, 문체와 목소리를 조절한다. 때론 편집자의 요구가 못마땅할 때가 있고, 내 생각과 다를 때도 많다. 양보할 것은 양보하고, 끝내 주장할 것은 고집을 부려보기도 한다. 그런 기나긴 논쟁과 타협, 치열한 합의의 결과물이 독자의 손에 전달되는 것이다.

원고를 잘라내고 솎아내고 가다듬는 과정을 통해 나도 모르던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의식하지 못했지만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표현, 불필요한 추임새, 혹은 왜곡된 시선까지 돌아보게 된다. 다른 사람과 함께 작업을 진행하는 과정. 그것은 미처 알지 못했던 나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결국 ‘부대끼며 다투는 번거로움을 결코 회피하지 말자’는 교훈을 새삼 깨닫는다. 평화주의자가 되어 다른 사람이 ‘좋아요’하는 말만 마냥 좋아했다면 내 안에 있는 티끌과 대못을 끝내 발견하지 못했으리라. 이 땅의 모든 투쟁주의자들에게 경의를!

자기 일에 있어 최선의 노력을 다하려고 이를 악무는 ‘프로페셔널’들에게 존경의 인사를 건넨다. 책에도 썼지만, 그렇게 각자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오늘을 지켜가는 가운데 세상은 톱니바퀴처럼 돌아가고 우리는 한 발 앞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오늘도 나는 오전에 글을 쓰고 오후에는 편의점으로 향한다. 여전히 세상에는 죽비를 내리치는 스승이 많다.

봉달호 작가·편의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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