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피니언 > 칼럼 > 민태원의 메디컬 인사이드

[민태원의 메디컬 인사이드] 초고령화 시대 숙제 난청, 국가가 나서라


시청각 중복장애를 극복하고 사회사업가로 성공한 헬렌 켈러는 “보이지 않으면 사물에서 멀어지지만, 들리지 않으면 사람에게서 멀어진다”고 했다. 의사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소리를 듣지 못하면 소통은 물론 언어발달, 인지, 교육, 고용, 정신건강, 대인관계에 모두 악영향을 미친다. 그에 따른 사회·경제적 손실도 만만찮다. 난청을 개인이 아닌, 사회·국가적 문제로 바라봐야 하는 이유다.

지난달부터 본보에 주 1회 ‘잘 들리나요? 난청, 늦기 전에 준비하자’라는 주제의 기획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다. 취재하면서 놀란 것은 소리가 들리지 않는데도 오랜 기간 불편을 감수하고 사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고, 난청에 대한 사회적 시선 또한 나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난청인의 상당수가 나이 탓이려니 하고 체념한 채 살거나 형편이 어려워 보청기 등 청각 보조도구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수십년 전부터 청력을 잃은 채 살아 온 70대 후반 할머니는 “벽과 같은 세상에 살고 있다”고 한탄했다. 80대 여성은 복지관 지원으로 보청기를 무료로 갖게 되자 “새 세상을 만난 것 같다”며 기뻐했다. 한 청각 관리사는 “어르신들은 보청기를 하고 소리를 듣기 시작하면 대부분 엉엉 운다”고 했다. 일찍 난청이 온 50대 후반의 대기업 간부는 귀머거리 혹은 노인 취급 당하는 게 싫어 보청기를 끼지 않는다고 했다.

전문가들이 추정하는 국내 성인 난청 인구는 1300만명이다. 65세 이상 노인들의 30~40%가 난청을 겪고 있다.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난청 유병 인구가 급속도로 늘어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한국은 2026년 초고령사회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다.

근래엔 음향기기 과다 사용에 따른 소음성 난청의 급증이 우려된다. 지하철을 타면 대다수 탑승자들이 귀에 유무선 이어폰을 꽂고 있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청소년이나 젊은층이 더 많긴 하지만 요즘엔 중장년, 고령층을 가리지 않는다. 대중교통의 경우 그 자체 소음만도 상당한 수준이어서 음향기기 소리를 더 키워 들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청각기관 손상 위험이 높다는 게 이비인후과 의사들 얘기다. 젊을 때부터 귀를 혹사하면 나이 들어 노화성 난청 발생을 더 앞당기고 한 번 잃은 청력은 돌이킬 수 없다.

호주나 미국 인도 중국 등은 일찍부터 국가 차원의 난청 예방·관리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도 최근 보고서를 통해 난청 예방과 조기 진단, 치료, 청각 재활이 통합적으로 이뤄지는 국가 주도 관리를 주문하고 있다.

반면 한국 정부는 난청에 대한 인식과 정책적 지원이 한참 부족하다. 2012년 국민건강영양조사를 끝으로 변변한 난청 유병률 통계조차 없다. 민간 차원의 조사가 간혹 수행되고 있지만 규모와 지속성 면에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정책의 기본이 되는 정확한 난청 실태 조사가 우선 이뤄져야 하고 난청 예방 프로그램과 인식 개선 캠페인이 시급하다. 아울러 난청 정책과 청각 지원 서비스를 통합 관리할 부서나 관련 법규도 마련돼야 한다. 고령화 추세 속에 난청을 심각한 문제로 보는 정부의 인식 전환이 먼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런 측면에서 취재 중 인터뷰한 노인단체 인사가 제안한 ‘난청국가책임제’가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난청에 대한 제도 변화를 이끌어내려면 결국 국가적 어젠다로 추진할 필요성이 있겠다는 생각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치매국가책임제 공약을 임기 중 차근차근 실현해 정부 지원을 늘리고 치매 환자와 가족, 국민들의 인식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내년 대통령 선거를 준비하는 후보 캠프에서도 난청 문제 해결에 관심과 정책적 의지를 보여주길 기대한다. 난청은 초고령화 시대, 풀어야 할 또 다른 숙제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