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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다양성!… 자폐증에 대한 인식의 진화

[책과 길]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
존 돈반·캐런 주커 지음, 강병철 옮김
꿈꿀자유, 864쪽, 4만원

4월 2일은 유엔이 정한 '자폐증 인식의 날(Autism Awareness Day)'이다. 미국에서는 이 날이 낀 4월을 '자폐증 인식의 달'로 지정해 다양한 행사를 벌인다. 미국 주식시장인 나스닥이 내건 대형 현수막이다. '오티즘 스피크스(autism speaks)'는 미국 최대의 자폐권익운동 단체로 이 단체의 로고인 파란색 퍼즐 조각은 자폐증의 상징이 되었다. 오티즘 스피크스 페이스북 캡처

정신 발달의 지체나 이상으로 의사소통, 인간관계, 학습, 행동 등에서 장애를 보이는 이들이 있다. 이들에게 자폐증이란 병명이 붙은 것은 1940년대 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어린이정신과 의사인 레오 카너는 몇몇 어린이들에서 유사하게 나타나는 이상 행동이 그때까지 알려지지 않은 장애라며 ‘정서적 접촉에 대한 자폐증적 장애’라고 명명했다. 그러면서 “가장 중요한 차이는 이 어린이들이 아주 이른 유아기부터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연결하는 능력이 없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폐증은 처음엔 정신장애로 간주됐고 정신장애인들은 쓸모없는 존재, 치워버려야 할 존재로 취급됐다. 당시 미국정신의학협회 학회지에 정신장애 어린이의 안락사를 옹호하는 논문이 실릴 정도였다. 부모들은 자폐 자녀를 수치스러워했고 숨기기에 급급했다. 지능이란 영역에서 장애가 있다고 판단되는 사람에 대한 대책은 70년대까지도 시설에 수용하는 것이었다.


영국 정신과 의사 로나 윙은 1979년 자폐적 특성이 매우 다양한 지적·사회적 능력을 지닌 사람에게, 매우 다양한 강도와 조합으로 나타난다는 점에 주목해 자폐증을 특정한 병이 아니라 ‘스펙트럼’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자폐가 매우 크고 넓게 나타나며 경계가 불분명하다는 점을 표현한 이 말은 자폐증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현재 자폐적 증상들은 모두 ‘자폐스펙트럼장애’란 진단명으로 통합됐다.

젊은 자폐증 환자이자 자폐권리운동가인 짐 싱클레어는 93년 ‘우리를 위해 슬퍼하지 마세요’라는 제목의 연설을 했다. 자폐를 갖고 사는 것 역시 인간으로 존재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고 자폐증은 완치시켜야 할 질병이 아니라고 주장한 이 연설은 ‘신경다양성’ 운동의 시작이 된다. 인종다양성이나 생물다양성처럼 신경다양성이란 측면에서 자폐인을 바라봐야 한다고 했다.

나이키와 스타벅스는 이 로고를 이용해 디자인한 운동화(위)와 종이컵(아래)을 선보였다. 오티즘 스피크스 페이스북 캡처

자폐증의 역사는 80년 정도 된다. 그 역사는 저주이자 비극이고 수치였던 자폐를 인간이 존재하는 또 하나의 방식으로, “인류라는 옷감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주름”으로 바꿔놓은 시간이었다.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는 자폐증의 역사를 따라가며 자폐에 대한 문화적 태도가 어떻게, 그리고 왜 그토록 근본적으로 변했는지를 보여준다. 자폐증의 역사는 ‘어딘지 다른 사람’이 살아야 할 필요가 있느냐는 물음에 맞서 살아갈 이유를 인정받고 교육받을 권리, 시설이 아니라 사회에 속해 살아갈 권리, 치료받을 권리를 획득하고 열등한 존재나 모자란 존재라는 인식마저 허물어 버린 과정이었다.

미국 저널리스트 2명이 함께 쓴 이 책은 자폐증의 역사에서 중요한 국면들을 차례로 조명하는데, 당시 국면에서 주요 역할을 했던 인물들의 이야기를 부각한다. 최초로 자폐증 판정을 받은 소년 도널드 트리플렛을 시작으로 도널드의 장애를 자폐증으로 명명하며 자폐증을 발견해낸 의사 레오 카너, 엄마의 냉담 때문에 자폐증이 발생한다고 주장한 인기작가 브루노 베텔하임, 베텔하임의 이론을 박살 낸 정신의학자 버나드 림랜드, 자폐증 부모 운동을 시작한 루스 설리번, ‘아스퍼거 증후군’이라는 병명의 유래가 되지만 나치에 참여한 사실이 드러나는 의사 한스 아스퍼거, MMR 백신(홍역, 볼거리, 풍진을 한 번의 주사로 예방하는 백신)이 어린이 자폐증을 유발한다는 논문을 발표해 백신 거부 운동을 초래한 젊은 의사 웨이크필드, ‘자폐 스펙트럼’이란 말을 만들어낸 의사 로나 윙 등의 휴먼 드라마가 이어진다.

책은 특히 “자폐의 역사에서 한순간도 빠짐없이 항상 그 자리에 있었던 존재는 부모들”이라며 자폐 자녀를 키우며 세상의 편견과 폭력에 맞선 부모들, 자녀를 위해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헌신한 부모들을 역사의 주인공으로 묘사했다. “그들은 스스로 말할 수 없는 자녀들을 위해 말했다. 그리고 자녀들을 대신해 세상을 바꿨다.”

자폐증은 아직도 의학적으로 정확하게 정의되지 않았고 원인도 규명되지 않았다. 하지만 자폐를 바라보는 태도는 확연히 바뀌었다. 자폐증의 역사는 인간은 어떻게든 올바른 방향을 찾아간다는 믿음, 과학은 결국 진실을 향해 나아간다는 믿음, 그렇게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확인해 준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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