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어 가는 화석연료 시대… 석유의 ‘권좌’ 흔들

이-퓨얼·그린암모니아·메탄항공유… 에너지 패권 잡기 경주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전 세계가 온난화 주범으로 지목된 탄소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석유를 대체할 친환경 연료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태양광과 풍력은 기본이고 음식물 쓰레기나 암모니아 등을 대체 연료로 활용하려는 이색적인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해외 기업의 각종 친환경 연료 개발 열풍에 한국 기업들도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모습이다.

국제사회 최대 현안이 된 ‘탄소 중립’

지난 13일 영국 콘월에서 막을 내린 G7(주요 7개국) 정상회의에서 각국 정상들은 저마다 탄소 중립 이행 의지를 다시금 확인했다. 이들은 지구 평균기온 상승이 섭씨 1.5도를 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이행 방안을 비롯해 탈석탄 및 청정·재생에너지 확대 방안, 기후 재원 마련 방안 등도 논의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마지막 일정으로 진행된 ‘기후 변화·환경 확대 회의’에서 선도 발언자로 나서 한국의 탄소 중립 달성 의지를 피력했다. 문 대통령은 오는 11월 영국에서 열리는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2030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추가 상향해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이처럼 탄소 중립이 전 지구적인 과제가 되면서 각국은 20세기 대체 불가한 최고 에너지원으로 꼽혔던 석유와의 이별을 모색하고 있다. 이산화탄소는 전체 지구 온실가스의 88%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국 석유회사 BP는 “지난 20년간 이산화탄소 농도 중 75%가 화석연료 사용에서 비롯됐다”며 “석탄을 포함한 화석연료 시대가 열린 1750년 이후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30% 이상 증가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석유 뒤로한 채… 친환경 연료 개발 붐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각국은 기존에 사용했던 자동차, 항공, 선박 등의 내연기관을 그대로 쓰면서 석유를 대체할 수 있는 연료를 찾는 데 주력하고 있다.

탄소를 뿜어내는 화석 연료와 원자력 발전을 줄이는 대신 친환경적인 재생 에너지를 저장하고 연료화하는 게 당면 과제다.


최근 주목받는 ‘이-퓨얼(e-fuel)’은 물을 전기 분해해 얻은 수소(H2)에 이산화탄소(CO2)나 질소(N2) 등을 합성한 친환경 합성 연료다. 풍력이나 태양광 등 재생 에너지로 생산하고, 에너지 밀도가 높아 효율성이 좋다는 평가를 받는다. 내연기관 산업이 발달한 독일과 일본 등은 이러한 친환경 합성 연료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일본 정부는 2050년까지 친환경 합성 연료 가격을 가솔린보다 낮춰 공급한다는 구체적인 정책도 마련한 상태다.

우리나라도 초기 개발 검토에 나섰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4월 연료·자동차·항공·선박 분야 전문가 30여명으로 구성된 ‘수송용 탄소중립연료 연구회’를 발족했다. e-fuel 개발의 필요성을 따져보기 위해서다. 한국자동차연구원 양재완 선임연구원은 18일 “향후 전기·수소차뿐만 아니라 e-fuel을 사용하는 내연기관차가 탄소 배출 저감 측면에서 상당한 경쟁력을 보유할 가능성도 있다”며 “e-fuel의 성장 가능성에 폭넓게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선박 분야 역시 액화천연가스(LNG)와 함께 화석연료를 대체할 친환경 연료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HMM, 롯데정밀화학, 롯데글로벌로지스, 포스코, 한국선급, 한국조선해양 등은 지난달 그린 암모니아의 생산과 유통 인프라 조성을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 세계 최대 선사인 머스크는 3년 내 암모니아 등 친환경 연료를 사용하는 컨테이너선을 발주하기로 했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국내 조선사들도 암모니아 추진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암모니아는 친환경 연료 중 보관 및 저장·운송이 상대적으로 쉬워 안정성과 경제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받는 무탄소 연료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2020 에너지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2060년 암모니아, 수소 등의 선박 연료 사용 비중은 60%까지 높아지며, 암모니아가 이 중 절반가량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항공 분야에선 음식물 쓰레기에서 발생하는 가스를 항공유로 전환하는 기술이 나와 눈길을 끈다. 미국 국립재생에너지연구소의 데렉 바던 박사 연구진은 지난 3월 국제 학술지 ‘미국립과학원회보(PNAS)’를 통해 “음식 쓰레기를 항공유로 바꾸면 화석 연료를 쓸 때보다 온실가스 배출을 165%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음식물 쓰레기가 미생물 발효 과정에서 바이오 연료인 메탄으로 바뀌는데, 메탄 미생물의 발효를 억제해 음식 쓰레기를 휘발성 지방산(VFA)으로 변환시켜 연료화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차세대 친환경 연료 등장은 시간문제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전문가들은 석탄과 석유 등 화석 연료가 당분간 최고 에너지원의 자리를 지킬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친환경 연료 상용화까지 시간이 필요한 데다 높은 제조 비용, 낮은 생산 효율성 등 문제 해결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 최고 에너지 전문가인 대니얼 예긴은 지난달 신간 ‘뉴맵(New Map)’을 통해 “석유는 전 세계를 움직이는 기본적 연료로, 천연가스와 함께 가장 중요한 위치를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친환경을 강조한 차세대 연료의 등장에 이견을 다는 이는 많지 않다. 에너지업계 한 관계자는 “에너지원으로서 석유의 경쟁력은 여전하지만 탄소 배출 규제 강화가 전 세계적 흐름이 됐다”며 “친환경 수요가 느는 상황에서 대체 연료 개발은 필수 불가결한 것”이라고 말했다.

1973년 ‘오일 쇼크’의 주역이었던 아흐메드 자키 야마니 사우디 석유장관의 예언도 재조명받고 있다. 그는 생전 “석기 시대가 돌이 부족해 끝난 게 아니듯, 석유 시대도 석유 부족 때문에 끝나는 게 아닐 것”이라고 말했었다.

지난해 BP는 석유와 가스 생산을 10년 내 40% 수준으로 줄인다고 발표했다. 앞으로 새로운 국가의 화석연료 탐사도 하지 않기로 했다. 석유 수요가 정점을 지나고 친환경 연료 수요가 늘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본격적인 대체 연료 찾기에 돌입한 셈이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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