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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춘추] 일본은 왜 그럴까

천지우 논설위원


4년 전 도쿄에서 일본어학원을 몇 달 다녔다. 학교식으로 운영되는 이 학원은 중국 학생이 51%, 한국과 베트남 학생이 각각 22%, 여타 동남아국가 출신이 나머지 5%를 차지했다. 그곳에서 관찰한 결과, 학업 성취도와 성실성 모두 한국 학생들이 월등했다. 머릿수가 가장 많은 중국 출신은 간혹 뛰어난 학생이 있긴 했지만 전반적인 수준은 한국인에 뒤처졌다. 하지만 일본인 강사들은 이상하리만치 한국 출신에 대해 무관심했고, 대신 중국 학생들에게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중국이 힘이 세고 돈이 되니까 그러는 것 같았다. 한국인은 늘 그렇게 있어왔기에 잘 보이지 않는 공기 같은 존재로 인식되는 듯했다. 누가 봐도 돋보이는 실력을 일부러 외면하고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아서 불쾌하고 괘씸했다. 이건 일반화할 수 없는 개인적 경험이지만, 일본 사람들이 한국인을 어떤 시각으로 보는지에 대한 단편적인 대답은 될 수 있겠다.

한·일 관계가 극도로 나빠진 지 한참 됐고 나아질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문재인정부는 올해부터 스탠스를 확 바꿔 관계 개선에 의욕을 보이고 있으나, 스가 요시히데 정권은 심하다 싶을 정도로 호응을 안 하고 있다. 답답한 상황이다. 그렇다고 나쁜 놈들이라고 욕만 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해와 분노만 쌓일 뿐이다.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대응하려면 상대가 왜 그러는지를 알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 일본은 지금 한국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기에 저런 태도를 취하는 걸까.

마이니치신문 서울특파원을 지낸 사와다 가쓰미는 ‘한국과 일본은 왜?’라는 책에서 현재의 양국 관계를 ‘냉전 종식 후 30년 동안의 구조적 변화에 의한 삐걱거림’이라고 표현했다. 국력이 강한 일본이 안보상 필요성 때문에 한국을 배려하던 관계에서 거의 동등한 힘을 가진 이웃나라 관계로 변했는데, 이 변화를 사람들의 의식이 따라가지 못해 삐걱거리고 있다는 얘기다. 사와다 기자는 한국에 비판적인 일본의 중장년층과 대화해보면 ‘그동안 쌓아올린 관계를 한국이 부정하는 듯해서 용서하기 어렵다, 건방지다’는 감정이 느껴진다고 했다. 약한 존재였던 한국을 위에서 내려다보기만 하고 한국에 대한 지식을 업데이트하지 않은 사람들이 달라진 한국의 모습에 화를 내고 있는 것이다.

김호섭 중앙대 명예교수는 비슷한 맥락으로 일본의 ‘혐한’ 현상을 설명했다. 한·일 사이에 국력의 상대적 변화가 발생했고, 한국이 상승한 국력을 배경으로 기존에 형성됐던 양국 간 기본질서를 일방적으로 변화시키려 하는 것에 대한 반감과 좌절감이 혐한을 만들어냈다는 설명이다. 오구라 가즈오 전 주한일본대사에 따르면 일본 사람들에게는 한·일이 대등한 관계가 됐다는 사실 자체가 과거사의 청산을 의미한다. 이런 관점에서는 발전한 한국이 계속 과거사 문제로 일본을 비판하는 게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그래서 지금 일본 정부가 갈등의 핵심인 강제징용과 위안부 문제에 관해 무조건 한국이 해결책을 가져와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는 것일 테다.

국립외교원 외교사연구센터 김종학 책임교수는 근대 일본 외교의 한국 인식을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곳에 한국이란 나라가 존재하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 실체를 직시하거나 진지한 연대와 협력의 대상으로 고려한 일이 없는 무인식(無認識)’으로 규정했다. 근대 이후 양국이 많은 역사와 이해관계를 공유해왔음에도 일본 외교의 이런 인식에 근본적인 변화는 없어 보인다는 게 김 교수의 평가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일본이 우리에게 정말로 중요한지, 일본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을 진정으로 원하는지’를 각자가 찬찬히 자문해보자. ‘그렇다’는 답이 나왔다면 상대를 이해하려고 노력할 수 있을 테고, 서로가 설득과 타협을 통해 새로운 층위의 관계를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사 문제에 관해 일본은 개전의 정이 안 보이며, 이젠 우리에게 일본이 별로 중요하지도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훨씬 많을 듯하다. 이런 현실 속에선 한·일 관계의 앞날이 어둡기만 하다. 그래도 화가 난다고 매사 핏대를 세우며 대응하는 건 무의미한 에너지 소모 같다. 진짜 전쟁을 할 것이 아니라면 서로 부대끼지 말고, 적당히 거리를 둔 채, 소 닭 보듯이 지내는 게 낫지 않을까. ‘모르면 손 빼라’라는 바둑 격언처럼, 당장 해결이 어려우면 그냥 내버려두는 게 최선일 수 있다.

천지우 논설위원 mogu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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