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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꼬리’가 덮을 수 있는 조직

김현길 사회부 차장


“제 사안은 경찰에서 검토를 하여 시시비비가 가려질 것으로 생각한다.”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은 택시기사 폭행 및 사건 축소 의혹이 언론 보도로 알려진 지 이틀 만인 지난해 12월 21일 이런 입장문을 냈다. 택시 블랙박스 영상을 복구했다는 보도가 나온 지난 1월 24일에는 변호인을 통해 “영상이 사건의 실체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될 것이므로 어떤 경위에서건 수사기관에 제출된 것은 다행”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입장만 보면 이 전 차관은 전혀 거리낄 게 없어 보인다.

반면 지난 3일 이 전 차관이 내놓은 입장은 사뭇 다르다. 앞서 나온 것들과 비교할 때 구구절절하고 조급함이 느껴진다. 그는 택시기사가 거절하긴 했지만 ‘영상을 지우는 게 어떻냐’고 요청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택시기사에게 건넨 1000만원에 대해선 영상 삭제 대가는 아니라고 하면서도 “공수처장(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후보로 거론되던 시기였기 때문에 위 금액을 드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입장문은 SBS에서 폭행 사건 당일 블랙박스 영상을 공개한 이튿날 나왔다. 영상엔 지난해 11월 6일 밤 택시기사를 향해 욕설을 하고 멱살을 잡는 이 전 차관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달라진 입장들 사이에는 언론 보도와 함께 경찰 진상조사가 놓여 있다. 실제 지난 9일 경찰에서 일부 드러난 ‘사건의 실체’는 올해 초까지 이 전 차관이 보인 태도와는 거리가 있다. 서울경찰청 합동진상조사단은 이 사건에서 핵심 물증인 영상 삭제를 요구한 혐의를 적용해 이 전 차관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키로 결정했다. 사건 담당 수사관에 대해서는 특수직무유기 혐의로 검찰에 넘기기로 했다. 경찰은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이 전 차관의 택시기사 폭행 사건의 부적절한 처리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제대로 처리했다면 진상조사가 필요 없었을 사건을 스스로 키운 책임을 사건 발생 7개월 만에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잘못을 바로잡기 위한 절차인 진상조사에도 불구하고 경찰에 대한 믿음이 쉬이 회복될 것 같진 않다. 우선 조사 결과 자체가 많이 지적한 대로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지휘라인에 있는 팀장, 과장, 서장은 ‘보고 및 수사지휘 대상 중요 사건’인 이 전 차관 사건을 보고조차 하지 않았다. “서초동에 변호사들이 워낙 많고 관련 사건이 많아 보고하지 못했다”는 당사자 진술은 의혹을 더 키운다. 조사 결과를 보면 팀장, 과장, 서장은 사건 발생 3일 후 이 전 차관이 여느 변호사와 다른 ‘신분’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서초서는 최초 언론 보도 이후 진상 파악 과정에서도 “평범한 변호사로 알았다”고 허위 보고했다.

담당 수사관 개인의 직무유기라는 조사 결과를 그대로 믿는다고 해도 문제는 적지 않다. 경찰 스스로 ‘힘 있는 사람’이 수사 대상인 사건에서 ‘꼬리’가 사건을 덮을 수 있는 조직이라는 점을 확인시킨 모양새가 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나온 결과만 놓고 보면 지휘라인에 있던 간부 모두는 사건 당사자가 누군지 알고도 수사 종결 때까지 사건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것이 된다. 검경 수사권 조정 등으로 올해를 ‘책임 수사 원년’으로 선포한 경찰 입장에서 더욱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할 지점이다.

김창룡 경찰청장이 지난 14일 “팀장, 과장, 서장 등이 제대로 확인하고 시정하지 못한 것이 더 큰 문제”라고 한 것은 그런 점에서 적절한 지적이다. 언제나 문제는 의지다. 김 청장은 신년사에서 경찰을 ‘거리의 판사’에 비유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동일한 잣대로 공평무사하게 법을 집행하도록 당부했다. 답은 이미 알고 있는 셈이다.

김현길 사회부 차장 h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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