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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논단] 한국의 국제적 위상과 경제정책

이제민(연세대 명예교수·경제학부)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해외 순방은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올라갔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다. 순방 전에는 G7(주요 7개국)에서 ‘D10’(민주주의 10개국)으로 가는 것이 새 그림인 것처럼 보이더니, 한국이 포함된 ‘G8’이 새 구도가 된 것 같다. 한국 위치가 이만큼 올라간 이유는 무엇인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한 가지 이유는 현재 한국이 선진국 중에서도 ‘선도국가’의 면모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20여년간 선진국들은 많은 문제에 직면해 왔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대침체가 지속됐지만, 재정을 동원한 본격적인 경기 부양은 이뤄지지 않았다. 1929년 대공황 이후 최대로 벌어진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노력도 이뤄지지 않았다. 많은 경제학자, 정책 담당자, 정치인이 그런 문제를 인식했지만 실제로 정책이 시행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문재인정부가 그런 문제를 선도적으로 해결해 보겠다고 나섰던 것이다.

현 정부의 시도는 성과를 거뒀다. 일차적 성과는 재정 투입에 의한 경기 부양이다. 2018년에는 잠재성장률을 웃도는 2.9% 성장을 했는데, 그중 민간소비가 1.5% 포인트를 차지했다. 그렇게 된 데는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바탕으로 최저임금을 올린 게 도움이 됐다. 2019년에는 2.2% 성장했는데, 1.5% 포인트가 정부 지출 증가 때문이었다. 정상적인 때라면 불건전한 성장 구도이지만, 미·중 갈등으로 국제 환경이 급속도로 나빠지면서 한국과 같은 무역국가인 독일이 0.6%, 싱가포르가 0.7% 성장한 데 비하면 우수한 성과였다. 2020년에는 코로나19 위기하에서 마이너스 0.9% 성장해 주요 선진국 중 가장 성장률이 높았다.

분배는 어떤가. 통계에 아직 잡히지는 않지만 분배 불평등의 첫째 원인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인 만큼 대기업 갑질 여지를 줄인 것은 효과가 있을 것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격차 완화는 쉽지 않지만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은 사실이다. 분배 악화의 또 하나 큰 요인이었던 노동소득분배율 하락은 2018년부터 뚜렷하게 개선됐다.

그런 한편에 문제도 있었다. 우선 코로나 사태에 잘 대응한 것은 방역 덕분이지 경제 정책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경제 정책에서는 당정 간 엇박자가 두드러졌다. 위기 발발 초 여당은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을 요구했지만, 기획재정부는 소극적 입장을 취했다. 타이밍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정보가 불완전한 상태에서 기재부의 입장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위기가 끝나가는 지금은 다르다. 많은 정보가 축적된 상태에서 초과세수가 나자 여당이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주자는 것은 정치 논리의 발로일 수 있다. 그러나 초과세수 일부를 국가채무 상환에 쓰자는 경제부총리의 반응은 더 황당하다. 아직 경기 회복이 완전하지 않은 데다, 코로나 사태로 어려움을 겪어온 취약계층 지원, 유례 없는 수준으로 떨어진 출산율 대책, 전 국민 고용보험 등 쓸 곳이 산적한 상황이다.

부동산 대책도 물론 문제다. 부동산 문제는 현 정부의 책임만은 아니다. 2014년 ‘초이노믹스’로 주택가격에 불을 붙여 놓았는데, 1997년 외환위기 이후의 경험으로 보면 그렇게 붙인 불은 10년씩 갈 수 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확고한 방침을 세우지 않고 ‘핀셋 규제’ ‘핀셋 과세’로 대처하다 해결이 안 되자 대책을 연발한 것은 분명 문제가 있었다. 그렇다고 그런 대책의 방향까지 잘못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번 불붙은 가격을 잡으려면 일관된 모습으로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심리를 꺾는 것이 요체다. 그런데 올해 보궐선거를 전후해 정치권이 그런 일관된 모습을 되돌리는 조치를 취하겠다고 약속했다. 결국 여당은 종합부동산세를 일부 완화하기로 의결했다. 그런 식의 정치 논리로 정책 일관성에 대해 시장이 의구심을 갖게 만들면 가격 상승 기대를 꺾을 수 없다. 유감스럽게도 경제부총리는 정치권의 그런 행태에 대해 초과세수 사용 문제에 있어서만큼 정면으로 맞서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현 정부가 시행한 정책은 일각에서 이야기해 온 것처럼 이상한 외진 길이 아니라 선진국들이 가고자 하는 방향을 선도하는 것이었다. 그 정책은 성과를 거뒀다. 문 대통령 순방은 그것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구체적 경제 정책에 들어가면 문제는 만만치 않다. 앞으로는 이 문제에 좀 더 집중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제민(연세대 명예교수·경제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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