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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섬情談] 면접장에서 만난 당신에게

최여정 문화평론가


안녕하세요, 저는 얼마 전 당신이 지원한 문화예술기관의 면접에서 만난 심사위원 중 한 명입니다. 꽤 큰 회의실이어서 우리 사이가 멀기도 했고, 코로나19 때문에 서로 마스크를 쓴 채라서 아마 제 얼굴을 기억하지는 못할 거예요. 그래도 전 당신의 얼굴을 잠깐이나마 봤지요. 면접자 확인을 위해 마스크를 내리고 인사를 부탁드렸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저도 그랬어야 했던 것 같아요. 제가 그 회사를 대표해 당신을 평가했던 시간이기도 하지만 당신 또한 나에게 맞는 회사인지를 그 자리에 있던 심사위원들을 통해 평가하는 시간이기도 하니까요. 면접이란 이렇게 회사와 지원자가 함께 일할 수 있는지를 서로 확인하는 자리이지만 늘 불균형한 시소 같죠. 알아요. 당신이 앉았던 그 자리에 앉아 쿵쾅대는 내 심장소리를 옆자리에 앉은 다른 지원자가 들을까 얼굴 붉혔던 시간이 제게도 있었으니까요.

오랫동안 간절히 바라던 직장, 일할 수 있는 기회, 잠 못 이루고 뒤척이며 몇 번이나 자기소개를 되뇌었을 당신의 지난밤이 스쳐 지나갔어요. 정규직 채용공고가 나가면 보통 수백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고, 그날 당신이 지원한 자리 역시 비록 기한이 정해져 있는 계약직이었지만 수십대 1의 경쟁을 뚫고 면접장까지 올 수 있었겠죠. 그룹 면접인지라 개인별로 다른 질문을 하기도 했지만 옆자리에 앉은 다른 지원자들과 같은 질문을 하기도 했어요. 아마 그 짧은 시간 더 많은 고민을 했겠지요. 어떻게 하면 옆의 경쟁자보다 더 인상적인 답변을 할까. 결국 이 시간이 지나 이 회사에서 일할 사람은 단 한 명이니까요.

그 선택이 저에게도 무척이나 어려웠습니다. 10여년간 다니던 직장이 문을 닫게 돼 지원했다는 50대 지원자의 도전을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이기도 했고, 공연장을 찾지 못해 어려워하는 관객을 지하철 입구부터 안내하기도 했다는 또 다른 지원자의 성실함에 마음이 움직이기도 했어요. 하지만 우린 단 한 사람을 선택해야 했습니다. 당신은 아니었지요.

면접에 떨어졌다고 너무 낙심하지 마세요. 준비가 부족했다고 자책하지도 마세요. 당신 옆자리의 누군가가 더욱 자신감 있게 인사했을 뿐이고, 당신이 미처 살피지 못하고 면접장을 떠났을 때 누군가는 그 흐트러진 의자를 정리했을 뿐입니다. 대단한 차이가 합격과 불합격을 가르는 게 아니라 살아보니 세상은 그런 작은 일로 움직인다는 걸 당신에게 말해주고 싶었어요. 서류전형을 통과했다는 건, 당신이 ‘우리 회사에서 함께 일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인지 만나보고 싶어요’의 다른 말이겠지요. 아주 많은 뜻이 담겨있겠지만 그중 우선인 건, 먼저 일하고 있는 직원들과의 어울림인 것 같아요. 당신의 실력도 그 자리에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협업할 수 있는 정도, 딱 그만큼이면 되는 거죠.

당신은 그 자리에 넘치게 실력을 갖춘 사람이었어요. 지금은 마음 쓰라리겠지요. 하지만 당신에게 어울리는 자리는 여기가 아니라 다른 곳에 있습니다. 저 또한 몇 번의 낙방을 경험했지요. 세상 그런 경험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무척 아팠지만 그 실패 속에서 저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됐고 제가 좋아하는 일을, 제 실력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찾을 수 있었어요. 이 연극 한 편 권하고 싶네요. 이탈리아 출신 작가 스테파노 마시니의 ‘7분’이라는 작품이에요.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을 통해 미국 자본주의 역사를 보여주는 연극 ‘리먼 트릴로지’로 세계적 주목을 받은 작가가 이번엔 프랑스 섬유공장을 배경으로 회사와 개인의 고용구조 현실에 묵직한 질문을 던져요.

연극 중에 이런 대사가 있었어요. “매일 아침, 회사로 가는 이 버스를 타지 못할 때가 올까봐 무서워져.” 평생직장이라는 가치는 우리 아버지 때 이후로 사라져 버린 지 오래지만 우리 모두는 여전히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일에 쏟죠. 그 장소가 회사이든 아니면 나 혼자 하는 일이든 즐거운 일을 찾고, 그 노동의 가치로 정당한 대가를 받는다는 건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일입니다. 지금 길을 잃고 잠시 헤맬지 몰라도 당신은 그 길을 찾아 일터로 가는 버스에 오를 거라 믿어요, 당신답게.

최여정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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