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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옥의 컬처 아이] ‘이건희 컬렉션’ 문체부 행보 유감


국민일보에 ‘명작 in 이건희 컬렉션’을 5월부터 주 1회 연재하고 있다. 정선 ‘인왕제색도’, 이중섭 ‘황소’, 김홍도 ‘추성부도’, 유영국 ‘산’, 천경자 ‘꽃과 나비’…. 매주 작가와 작품을 고를 때마다 느끼는 건 이건희 컬렉션이 졸부들의 과시용과는 차원을 달리한다는 점이다. 컬렉션을 통해 한국미술사를 보여주려 한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컬렉션에 계통이 있다. 예컨대, 전남도립미술관에 기증된 천경자 작품 ‘만선’은 거친 흙이 캔버스 표면에 발라져 있다. 통상 분채와 석채를 써서 채색하던 작가가 작품 세계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부단히 재료적 실험을 해온 노력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런 실험적 작품을 산다는 것은 한 작가의 작품 세계를 맥락화하겠다는 의지가 없었다면 불가능하다. 1980년대부터 이건희 삼성 회장의 미술품 심부름꾼을 했다는 이호재 서울옥션 회장이 밝힌 것처럼 “엄청난 시간과 공을 들인” 컬렉션이라는 게 실감이 났다.

그런 ‘세기의 컬렉션’이 기증된 이후 문화체육관광부가 보여준 행보는 실망스럽다. 이건희 미술관 건립 장소 발표 일정을 수시로 번복하고, 컬렉션을 국민에 보여주는 전시 역시 ‘정치 이벤트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4월 말 유족들이 컬렉션의 국가 기증을 발표했을 때 국립중앙박물관은 6월부터, 국립현대미술관은 8월부터 이를 국민에게 공개하는 전시를 열겠다고 했다. 그런데 돌연 7월 공동 개최로 바뀌었다. 문체부 지시에 따른 것이다. 이 바람에 박물관은 한 달 늦추고 미술관은 한 달 앞당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이마저도 구체적인 개막 날짜를 확정하지 못한 채 ‘문체부 바라기’만 하고 있다. 황희 문체부 장관이 이건희 미술관 건립 장소를 발표하면서 전시 일정도 동시에 공개하는 ‘세리머니’를 할 예정이었으나 건립 장소 발표 일정이 자꾸 연기됐기 때문이다.

건립 장소 발표 일정은 애초 이달 15일 전후에서 이달 말로 늦춰진 데 이어 다시 7월 초로 연기됐다. 전국 지자체가 유치전에 뛰어들어 과열 양상이 벌어지는데다 내년 초 대선을 앞두고 수도권 대 비수도권 싸움으로 확전하는 양상이라 정책 결정이 쉽지 않았을 테다. 그래서 처음부터 신중해야 했다. 행정부가 일정을 번복하면 정책 신뢰도가 떨어진다.

통상 전시는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알아서 한다. 그런데 문체부가 개입하면서 죽어나는 것은 일선의 학예사들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그나마 연구가 축적된 국보와 보물을 중심으로 전시하기에 수월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날벼락처럼 일정이 한 달이나 앞당겨진 국립현대미술관은 사정이 다르다. 미술계 관계자는 “아무리 기증 작품전이라고 해도 작품과 작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하다. 기증받은 거 ‘구경시켜 주는’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

더 우려되는 것은 7월에 이건희 컬렉션 전시를 두 국립기관이 동시에 여는 행위 자체가 정치적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는 점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8·15 특별사면 가능성과 관련한 문재인 대통령의 표현은 완화돼 왔다. 이달 초 재벌 총수들과 만난 자리에서는 “공감하는 국민이 많다”고 밝혀 일각에서는 반발도 있었다.

그래서 문체부가 7월에 전시를 열도록 지시한 것은 8월 사면에 앞서 대대적인 ‘이건희 감사 무드’를 조성함으로써 반발 여론을 무마하려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살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컬렉션 전시와 사면은 별개의 사안이다. 두 사안을 결부시키는 시각도 있으나 일반적 관점에서 보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기증자의 뜻은 미술관이 소장품에 대한 충분한 연구를 해서 제대로 보여줄 때 빛난다. 미술이 할 일에 정치가 나서지 말았으면 한다.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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