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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블시론] 평화가 절실한 또 다른 전쟁

안교성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역사신학)


오늘은 한국전쟁 71주년이 되는 날이다. 우리는 또 다른 전쟁을 생각해 보자. 성차(性差)를 역사적·주제별로 다룬 ‘가장 긴 전쟁’(The Longest War·한글번역본 ‘성과 사회’)이란 책이 있다. 태고 이래 ‘인류 전체가 결부된 대규모 최장기전’, 곧 남녀 관계에 관한 책이다. 이 관계를 전쟁으로만 묘사할 수 없지만 평화가 정착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남녀 갈등은 고질병이라고 할 만큼 그 역사가 장구하고, 시정하려는 노력 역시 장구하다. 그러나 이런 노력이 본격화된 것은 불과 얼마 전인 19세기부터다. 여성운동(광의의 페미니즘)을 주도했던 서구의 경우 일대 변혁기였던 종교개혁, 프랑스혁명, 10월 혁명 모두 남성 위주의 사건으로 끝나버렸다. 여성운동은 스스로 주도권을 가지려는 노력을 기점으로 전기를 맞이했는데, 대표적 시발점은 여성 참정권운동이다. 이후 여성운동 전개는 ‘물결(wave)’의 비유를 통해 분류된다. 요약하면, 첫 번째는 참정권운동으로 대표되는 정치운동, 두 번째는 사회 변화를 추구하는 문화운동, 세 번째는 서구 중산층 틀을 넘어서는 제3세계적 나아가 지구적 인종운동, 네 번째는 개별성, IT혁명, 일상성 등을 고려하며 새로 부상 중인 운동이다.

더구나 한국 사회는 압축 근대화를 겪으면서 남녀 관계의 다양한 개념들이 공존한다. 주로 부정확한 통속적 개념들이 사용되는데 가부장주의, 양성평등주의, 페미니즘(한국에서 통용되는 의미)이란 세 가지 유형을 들 수 있다. 첫째는 구세대 유형이지만 관성을 지니고, 둘째는 정착하고 있으나 만족할 만하지 않으며, 셋째는 시작 단계부터 장애에 봉착하고 있다. 필자도 어머니, 아내, 딸과 함께 살아오면서 이 세 가지 유형의 문제를 접하게 됐다.

이것들은 일종의 이념형 혹은 이데올로기로서 인간 삶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가령 가부장주의는 장본인인 남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 영향 아래 있는 여성의 문제이고, 이런 의식이 다음 세대에 이어진다. 양성평등주의와 페미니즘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남녀 관계는 전 인류가 관여된 문제요 함께 풀어야 할 숙제이다. 남성은 여성의 노력을 인정하고, 지지하고, 동참하고, 분투해야 한다.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관심과 안타까운 마음이 즉각적인 행동 변화를 가져오지 않기 때문이다. 여성도 남성을 경쟁·대립·혐오의 대상으로만 여기지 말고, 동역자 곧 ‘내 편’으로 만들려는 자세가 중요하다. 남성 가운데 인식과 공감이 부족하거나, 마음은 있어도 행동으로 익히지 못한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필자에게서도 동시에 ‘가부장주의적이고, 양성평등적이고, 페미니스트’적인 모순이 나타난다. 어쩌면 우리 모두 이런 혼란과 착종의 가해자요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최근 교회가 평화보다 갈등의 진원지가 되고 있다. 여성운동 분야도 한국 정치 상황과 결부돼 특히 좌파 페미니즘을 문제시한다. 그러나 마르크스적 페미니즘이 페미니즘을 대표하지도 않고, 사회 해방이 곧 여성 해방을 가져온다는 약속이 불발되는 한계도 노출됐다. 오히려 기독교 페미니즘 등 작지만 새로운 목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여성은 인류의 절반이고 교인의 대다수인데도, 교회는 그동안 충분히 여성 친화적이지 않았다. 성경을 보면 군중들이 간음의 문제를 여성에게만 전가했을 때 예수님은 전혀 다른 태도를 보여주셨고, 제자들이 값비싼 향유를 뿌린 여성에게 화를 냈을 때 예수님은 그 행위를 인정해주셨다. 과연 오늘날 교회는 누구를 더 닮았는지? 교회가 변하지 않으면 여성의 탈교회 현상, 여성의 달라진 역할이나 참여와 관련된 문제가 심각해질 것이다.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안교성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역사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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