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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가면 다 죽는다”… 北 민심이 심상찮다

[커버스토리] 北 최악의 쌀 사정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016년 9월 인민군 810부대 산하 한 농장을 방문한 모습. 뉴시스

북한의 식량난이 상당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공개석상에서 식량 문제를 언급한 것에서 사태의 심각성을 느낄 수 있다. 식량난으로 민심 이반이 가속하면 자력갱생으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를 정면 돌파한다는 김 위원장 구상은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지만 뾰족한 해결책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김 위원장은 국가 핵심 전략과 정책 노선을 결정하는 노동당 전원회의 첫날인 지난 15일 “지난해 태풍 피해로 알곡 생산계획을 미달한 것으로 해 현재 인민들의 식량 형편이 긴장해지고 있다”며 식량난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북한 최고지도자가 이례적으로 공개석상에서 식량난을 거론한 것을 두고 ‘식량 사정이 심각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북한은 농지가 부족하고 농업생산 기반이 취약해 만성적인 식량난에 시달려 왔다. 한 해 곡물 수요량은 550만t인 반면 생산량은 450~480만t에 그쳐 매년 약 70~100만t 정도의 식량이 부족하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코로나19까지 발발하며 식량 부족 사태를 가속한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차단을 위해 지난해 초부터 인적·물적 이동을 최소화하면서 식량 생산 및 공급에 차질이 생겼기 때문이다. 홍수 및 태풍으로 주요 곡창지대인 황해도와 평안도가 피해를 본 것도 식량난을 가중시켰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올해 북한의 식량 부족분이 85만8000t(약 두 달 분량)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아사하는 주민이 속출했던 1990년대 이른바 ‘고난의 행군’ 때만큼은 아니지만 김 위원장 집권 이래 최악의 상황에 내몰렸다는 시각이 많다.

탈북민 출신인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25일 “얼마 전 함경도 지역의 주민과 통화를 했는데, ‘살기가 점점 어렵다’ ‘7, 8월이 상당히 위기라 공포심이 조성되고 있다’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대북 소식통도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이대로 가면 다 죽는다’ ‘방법이 없다’는 말이 지난해 말부터 나오고 있다”며 “식량 사재기 현상 등으로 쌀과 옥수수 가격이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다고 한다”고 말했다.

북한 전문 매체인 데일리NK에 따르면 지난 2일 1㎏당 4100원이던 평양의 쌀값은 8일 5000원으로 훌쩍 올랐다가 16일 3900원으로 떨어졌다. 지난해 비슷한 기간(6월 6~19일) 평양 쌀값이 큰 변화 없이 4000원대를 유지한 것과 대조된다. 한국무역협회가 최근 발간한 ‘북한무역 월간브리프’를 보면 지난달 신의주의 옥수수 가격은 3500원으로 직전 달보다 900원 상승했다. 특히 김 위원장은 최근 한 달간의 잠행 기간에 쌀가격을 안정시키는 데 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6일 경기도 파주시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의 들녘. 주민들이 부족한 농기계 대신 소로 밭을 갈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 주민들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쌀과 옥수수, 감자 등의 소비를 줄이는 방식으로 식량난에 대응하고 있지만 계속 버틸 수 있을지는 회의적인 의견이 지배적이다. 북한 당국은 식량 생산을 늘리기 위해 황해남도 농장에 전업주부 1만3700여명을 정착시키는 ‘강수’를 뒀지만 큰 효과는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곡물 생산량 제고를 위한 비료와 비닐, 농기계 등의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김 위원장이 눈에 띌 정도로 살을 뺀 모습으로 등장한 것도 식량난과 연관이 있다”며 “식량난을 해결한 해법이 보이지 않는 와중에 ‘주민들은 먹을 게 부족한데, 최고지도자만 잘 먹고 잘산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분석했다.

식량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선 결국 부족분만큼의 식량을 외부에서 들여와야 한다. 정대진 아주대 통일연구소 교수는 “김 위원장이 식량 사정을 이야기한 것은 향후 국제사회로부터 식량을 지원받는 데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며 “‘애민정신’을 명분 삼아 남측과 미국의 인도주의 협력 제안을 받아들일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우리 정부는 식량 지원과 코로나19 백신 협력 등을 고리로 남북 및 북·미 관계 개선을 견인한다는 구상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8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 위원장이 대미 정책과 관련해 ‘대화’와 ‘대결’을 동시에 언급한 것도 이런 맥락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조한범 위원은 “중국의 원조로 급한 불을 끌 수는 있어도 식량난에 대한 궁극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며 “결국 미국이 대북제재를 해제해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코로나19 확산세가 좀처럼 잡히지 않으면서 북·중 국경 봉쇄를 쉽게 풀 수 없다는 점이 문제다. 식량 도입 과정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유입될 경우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김 위원장은 바닷물이 코로나19에 오염됐을까 봐 어업·염전 활동을 한동안 중단시킬 정도로 코로나19에 민감하다. 국가정보원도 지난해 11월 국회 정보위원회 보고에서 북한은 중국이 지원한 쌀 10만t을 코로나19를 이유로 받지 않고 있다고 보고했다. 북한은 올해 태양절(김일성 주석 생일·4월 16일)을 전후해 중국과의 국경을 열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지만 여전히 문을 걸어 잠그고 있다.

손재호 기자 sayh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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