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男 86% “남혐 심각” 女 86% “여혐 심각”… 서로 “내가 피해자”

[지령 1만호 특집-MZ세대 여론조사] 젠더 이슈 물어보니


“20대 무스펙 페미(니스트)의 1급 비서관 인선은 진짜 잘못됐다.”(22일 온라인 커뮤니티 ‘클리앙’ 글)

“페미가 뭐 어때서, 대통령이 페미니스트인데.”(21일 다음 카페 ‘소울드레서’ 글)

1996년생인 박성민 전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지난 21일 청와대 청년비서관으로 임명되자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가 ‘페미니즘’ 이슈로 들썩였다. 20, 30대 남성이 주로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래디컬 페미(니즘) 묻은 애를 청년 명목으로 임명했다” “페미+(여성)할당제+빽으로 선발됐다”는 글이 올라왔다. 그동안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해 온 ‘친문·남초’ 커뮤니티에서도 박 비서관이 청년과 민주당을 대변할 수 없다는 비판이 나왔다.

반면 여성 중심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큰일은 여자가 한다” “이게 진짜 청년의 목소리”라며 환영과 지지의 의견이 이어졌다. 일부 이용자는 박 비서관을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비교하고 “혐오 세력의 지지를 받아 당대표가 된 남자(이 대표)와 다르다”고 치켜세웠다. 박 비서관은 과거 여성의 신체를 본뜬 성인용품 ‘리얼돌’과 걸그룹 블랙핑크의 간호사 복장 뮤직비디오에 관해 비판적인 발언을 한 바 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젠더는 진영이 됐다. 청년에게 젠더 갈등은 진보·보수의 갈등, 영호남 갈등보다 더 심각한 사안으로 받아들여진다. 국민일보는 지령 1만호를 맞아 여론조사업체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9~12일 전국 만 18~39세 남녀 1000명(남성 522명, 여성 478명)을 온라인 설문조사했다. MZ세대 인식을 파악하기 위해 20, 30대를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조사 결과 응답자의 88.6%가 ‘한국사회 남성과 여성 간 젠더 갈등’이 ‘심각하다’고 답했다. 28.5%는 ‘매우 심각하다’, 60.1%는 ‘심각하다’는 의견이었다.

커뮤니티가 키운 상대 성 혐오


이어 MZ세대에게 ‘한국사회 남성 혐오 현상이 심각하다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남녀 간 차이가 분명하게 나타났다. 남성 85.7%가 ‘심각하다’고 응답한 반면 여성은 64.6%가 ‘심각하다’고 답했다. 반대 경우에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여성 혐오 현상’의 심각성을 묻는 말에 여성의 85.5%가 ‘심각하다’고 응답한 반면 남성은 64.5%가 같은 대답을 했다. 젠더 갈등이 첨예한 상황에서 남녀가 스스로를 혐오의 피해자로 여기고 있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젠더 갈등이 위험 수준에 이른 신호라고 분석했다. 장미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사회구조적 문제나 개인의 실패까지 모두 성별로 집단화해서 받아들이고 있다”고 했다. 다만 남녀 3명 중 2명이 상대 성의 혐오 현상이 심각하다는 데 동의한 것은 상대 성도 혐오의 피해자라는 인식을 함께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동안 전문가들은 젠더 갈등의 원인으로 취업난 등 청년에게 가혹한 사회경제적 환경을 주로 지목했다. MZ세대에게 직접 갈등의 원인을 묻자 ‘커뮤니티, SNS 등으로 익명의 의견 표출이 쉬워진 분위기’(40.3%)를 가장 많이 택했다. 이어 ‘여성의 상대 성(性)에 대한 잘못된 태도’(16.5%) ‘남성의 상대 성(性)에 대한 잘못된 태도’(15.2%) ‘정치인과 사회 인사의 갈등 조장’(13.7%) 순이었다. ‘취업난 등 경쟁하는 사회 분위기’(12.1%)는 가장 적은 선택을 받았다.

김태영 글로벌리서치 이사는 “경제적 기회가 줄어든 상황에서 싸움을 벌일 전선이 젠더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커뮤니티에서 불안함을 표현할 언어와 이야기를 찾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MZ세대 남녀는 ‘여성할당제’(사회 각 분야에서 자리의 일정 비율을 여성에게 할당하는 제도)를 두고도 갈라졌다. ‘여성할당제에 찬성하느냐’는 질문에 남성의 71.5%는 ‘반대한다’고 답했다. 특히 29.7%는 ‘매우 반대한다’고 했다. ‘여성할당제 폐지’를 주장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이대남’(20대 남성)의 높은 지지를 얻은 배경엔 이런 여론 흐름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반면 여성의 68.0%는 여성할당제에 찬성의 뜻을 밝혔다.

승진, 女 82%·男 47% “불공정”

MZ세대 여성이 할당제에 우호적인 이유는 취업시장에서 느낀 차별 탓인 것으로 보인다. ‘남녀 간 취업 기회가 공정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여성의 71.8%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할당제를 강하게 찬성했던 25~29세 여성의 “그렇지 않다” 답변 비율(75.7%)이 가장 높았다.

반면 MZ세대 남성은 ‘남녀 간 취업 기회가 공정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절반이 조금 넘는 51.0%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나머지 절반인 49.0%는 ‘공정하다’는 입장이었다. ‘취업 기회가 남성과 여성 중 어느 쪽에 유리한지’ 묻는 질문에도 남성의 59.4%는 ‘여성이 유리하다’고 답했다. ‘남성이 유리하다’는 응답은 40.6%로 오히려 적었다.

‘직장에서 남녀 간 진급과 승진 기회가 공정한지’ 질문에도 남녀 인식 차이가 컸다. 여성은 81.6%가 공정하지 않다고 답한 반면 남성은 46.9%만 같은 대답을 했다. 특히 25~29세 여성과 남성의 시각 차이가 분명했다. 해당 연령대 여성의 83.5%가 ‘진급과 승진 기회가 공정하지 않다’고 답한 반면 남성은 38.8%만 이에 동의했다.


문재인정부의 성평등 정책에는 남녀 모두 비판적 태도를 보였다. ‘현 정부의 성평등 정책이 남녀 갈등을 해소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남성의 79.0%, 여성의 74.2%가 부정적 평가를 내렸다. 특히 ‘이대남’의 불만은 압도적이었다. 18~24세 남성의 51%, 25~29세 남성의 41.9%가 ‘전혀 그렇지 않다’고 응답했다.

18~24세 여성 82% 비혼 출산 ‘동의’

방송인 사유리씨는 최근 정자은행에 보관된 남성의 정자를 기증받아 아기를 낳았다. 이런 비혼 단독 출산에 대해 MZ세대 66.4%가 ‘동의한다’고 답했다. 성별로는 여성의 73.0%, 남성의 60.3%가 동의했다. 특히 18~24세 여성의 경우 82.0%가 비혼 단독 출산에 동의했다.

사실혼, 비혼 동거인 등을 가족으로 인정하는 정부의 ‘가족 개념 확대’(민법개정안)에 대한 질문에는 MZ세대 67.4%가 ‘동의한다’고 답했다. 성별로 여성의 76.8%, 남성의 58.8%가 동의했다. 이 문항 역시 18~24세 여성(78.4%)에서 긍정적 답변이 가장 많았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를 물었을 때 MZ세대는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43.5%)을 가장 많이 골랐다. 이어 ‘원하는 주거에서 사는 것’(22.5%) ‘원하는 일자리를 갖는 것’(20.1%) ‘높은 사회적 지위를 얻는 것’(10.2%) 순이었다.

다만 18~24세 여성의 경우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을 고른 응답자 비율이 30.9%로 평균보다 낮았다. 젊은 여성들에게서 ‘행복한 가정’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덜 중시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들은 ‘원하는 주거에서 사는 것’(27.3%) ‘원하는 일자리를 갖는 것’(25.9%)을 비교적 더 많이 선택했다.

방극렬 기자 extre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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