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피니언 > 칼럼 > 한반도포커스

[한반도포커스] 바로 군인이다

김진우 세르모국제연구소 소장 (전 미국 국무부 선임보좌관)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군을 포함한 연합군의 승리를 견인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미국은 이 작전을 감행한 6월 6일을 국경일로 정해 기념한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과 주요 인사들은 이날 열리는 기념식에 참석해 감동적인 추모 연설을 통해 그 ‘역사적 승리’와 아울러 이를 위해 산화한 군인들을 기억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그중 1984년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푸앙트 뒤 오크(Pointe du Hoc)’ 연설문은 희생된 군인들을 기리는 가장 아름답고 감동적인 연설문으로 남아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 영화를 통해 노르망디 해안가에서 벌어진 전투의 처참함과 야만성, 용맹함을 영화 초반 24분간 보여주며 노르망디 작전을 대중의 뇌리 속에 깊이 각인시켰다.

하지만 올해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 중요한 기념일 관련 어떠한 기념사나 추모의 언급도 없었다. 해리스 부통령 또한 이에 대한 특별한 언급 없이 미국의 메모리얼데이 휴일을 앞두고 “긴 주말을 즐기라”는 트위터를 남겨 대중의 뭇매를 맞았다. 당일이 돼서야 트위터에 노르망디 작전에 대한 짧은 추모의 글을 남겼을 뿐이다.

공교롭게도 한국의 6월은 호국보훈의 달로 지정돼 국가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추모하고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6월 6일 현충일과 6·25전쟁 당일 언론 보도들은 하나같이 기념사 내용과 과거 비극적 전쟁 상흔에 대한 단편적인 사건들을 형식적으로 나열할 뿐이었다.

요즈음 한국 사회 분위기는 군대와 군인들의 역할을 너무나 경시하고 있다. 대중은 방탄소년단이나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들의 이름을 줄줄이 외우고 있지만 천안함에서 희생된 46명의 군인 이름을 어느 누구 1명이라도 제대로 기억하고 있을까? 우리는 국가의 이름과 국민의 자격으로 그들의 노고와 헌신을 기억하고 지속적으로 감사와 경의를 표현해야 한다. 이를 기념일로 지정한 진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민주주의는 국가와 정부를 분리한다. 하지만 군인은 언제나 국가를 대표한다. 이는 절대 변하지 않고 변해서도 안 된다.

분명한 역설은 전쟁 준비 태세의 날카로움이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여유로움을 보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지 오웰은 “국민이 그럼에도 편히 잘 수 있는 것은 국민을 해치려는 자들을 응징하기 위해 거친 사내들이 감내하고 있는 만반의 준비 태세 덕분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말보다 더 아름다운 글이 있다.

“우리가 신앙의 자유를 누리게 해준 자는 성직자가 아니라 군인이다. 우리가 언론의 자유를 누리게 해준 자는 기자가 아니라 군인이다. 우리가 표현의 자유를 누리게 해준 자는 시인이 아니라 군인이다. 우리가 시위할 자유를 누리게 해준 자는 학생운동가가 아니라 군인이다. 우리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누리게 해준 자는 변호사가 아니라 군인이다. 우리가 투표할 권리를 누리게 해준 자는 정치인이 아니라 군인이다. 국기에 경례하고, 국기를 받들어 봉사하고, 시신을 넣은 관이 국기로 덮이고, 시위자가 국기를 태울 자유를 누리도록 해주는 자는 군인이다.”

미국 육군 퇴역군인 찰스 M 프라빈스의 ‘바로 군인이다(It is the soldier)’라는 글이다. 이 긴 글은 전체적으로 인용할 만한 가치가 있다.

기업가, 학자, 지식인, 언론인, 의사, 엔지니어들과 AI, 핀테크, 4차 산업혁명, 가상화폐, 애플리케이션, 사이버 기술 또한 우리 사회에서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군인이 없다면 그 어떠한 것도 가능하지 않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희생하고 헌신한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 국가는 반드시 실패할 수밖에 없다.

김진우 세르모국제연구소 소장 (전 미국 국무부 선임보좌관)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