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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 불공정에 저항하는 방법

장유승(단국대 연구교수·동양학연구원)


조선시대에 새로 관직에 오른 사람이 거치는 통과의례를 면신례(免新禮)라고 한다. 신참을 벗어나는 예식이라는 말이다. 면신례는 조선 관료사회의 악습이다. 가혹한 곳은 문과 급제자가 처음 배속되는 성균관, 교서관, 승문원, 예문관 그리고 무과 급제자의 엘리트 코스로서 국왕 경호를 담당하는 내삼청이다. 모두가 선망하는 요직이다.

신참들은 얼굴에 분칠을 하고 누더기 옷을 입은 채 한밤중에 무리 지어 선배들 집을 찾아가 명함을 돌린다. 순순히 받아주지 않는 선배가 꼭 있다. 여러 번 헛걸음하고서야 겨우 만난다. 하인들에게 뇌물도 줘야 한다. 한 바퀴 돌고 나면 선배들을 모셔다가 성대한 잔치를 벌인다. 이 과정에서 갖가지 가혹 행위가 벌어진다. 얼굴에 먹칠하기, 몸에 진흙 바르기, 갓 부수기, 옷 찢기, 매질하기, 여름에 땡볕 쪼이기, 겨울에 입수하기, 강제로 술 먹이기…. 하여간 놀부 심술 저리 가라다.

한때의 수모는 참는다 쳐도 문제는 돈이다. 면신례 비용은 상상을 초월한다. 선배들에게 돌리는 명함 가격부터가 만만치 않다. 두껍고 큰 종이로 만들어야 하는데, 석 장 가격이 무명 한 필 값이다. 평민이 1년에 납부하는 군포가 2필이다. 수십 장을 만들어야 하니 명함값만 몇 년 치 세금이다. 이조차 잔치를 여는 비용과 각종 선물값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1643년 내삼청의 면신례 총비용은 무명 5, 6동(同) 값과 맞먹었다. 쌀로 환산하면 100가마가 넘는다. 제대로 면신례를 치르지 않으면 선배들이 함께 근무하기를 거부한다. 인품에 문제가 있다는 둥 지체가 낮다는 둥 핑계는 여러 가지다. 인사권자도 할 말이 없다. 이러니 빚을 내서라도 면신례는 치러야 한다.

면신례를 치르다 패가망신하는 사람이 속출했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이 비용을 백성에게 전가했다는 점이다. 내삼청 출신 무관들은 지방 수령으로 발령되면 백성을 수탈해 면신례 치르느라 진 빚을 갚았다. 무관 출신 수령이 유난히 탐욕스럽다는 비난을 듣는 것은 이 때문이었다. 실무를 담당하는 아전은 더했다. 병조 서리의 면신례 비용은 내삼청보다 두세 배나 많았지만 1년이면 그 비용을 뽑고도 남았다. 면신례는 부정부패의 원흉이었다.

면신례는 신참 관원의 필수 코스였지만 예외도 있었다. 과거에 급제하면 9품부터 시작이다. 그런데 이 중 일부를 6품으로 특채하는 제도가 있다. 대상자는 주로 한양의 명문가 출신이다. 머지않아 상관이 될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누가 신고식을 강요하겠는가. 결국 면신례로 곤욕을 치르는 사람은 시골의 한미한 집안 출신뿐이었다. 불공정한 가운데 더욱 불공정한 일이었다.

면신례 기원은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 말, 원나라를 등에 업은 권문세가 자제들이 연줄을 타고 과거에 급제했다. 이 중에는 젊다 못해 어린 나이의 아이들도 있었다. 선임자들은 분개한 여론을 등에 업고 이들을 괴롭혔다. 그러니까 면신례라는 혹독한 신고식은 본디 불공정에 저항하는 방법이었던 셈이다. 결국 악습으로 변질되고 말았지만 본래 취지만큼은 공감할 만하다.

25세 청와대 청년비서관이 혹독한 신고식을 치르고 있다. 한시적 임명직에 불과하다지만 젊은층의 목소리를 듣기 위한 인사라면 불공정하다는 청년층의 비판도 경청해야 마땅하다. 동등한 기회와 투명한 과정을 중시하는 그들에게는 불공정하게 보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 청년층을 배려한 인사나 제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청년 할당제, 청년 최고위원, 청년 비례대표….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청년층의 시선은 외려 싸늘하다. 청년층을 대변하기보다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급급한 그들의 모습이 기성 정치인과 다를 바 없어서이리라. 청년비서관이 과연 이런 의구심을 해소해 줄지 지켜볼 일이다.

장유승(단국대 연구교수·동양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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