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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산다] 한치에 환장하는 제주도

박두호 전 언론인


하도리 우리 집 앞바다는 요즘 밤마다 한치를 잡는 배들이 밝힌 집어등으로 말 그대로 불야성이다. 수를 셀 수 없이 많다. 우리 집 앞바다뿐인가. 제주도 바다 어디나 밤이면 불을 밝힌 배들로 장관이다. 다만 한치의 이동경로에 따라 배들이 동쪽으로 몰렸다 다시 서쪽으로 몰려가고, 이렇게 한치 떼를 따라다니느라 배들이 밀집되기도 하고 듬성듬성 자리 잡기도 한다. 집 앞에 불 밝힌 배가 적으면 어제 한치 조황이 좋지 않았던 것이고 많으면 며칠 잘 잡히고 있다는 의미다.

우리 동네 낚시꾼들은 벌써 5월 말부터 지난해 사용했던 한치 낚시채비를 꺼내 새것으로 갈거나 가지채비를 다시 묶으며 마음을 다진다. 밤에 한치를 유인하는 데 사용하는 결정적 장비인 집어등 서너 개도 새것으로 갈고 발전기도 점검하며 올해 풍어를 결의한다. 해녀들이 봄에 우뭇가사리와 성게로 일 년 중 가장 큰돈을 만질 수 있어 기대에 부풀어 있듯 6월부터 8월까지 이어지는 한치철은 제주 낚시꾼들을 들뜨게 한다.

한치 낚시는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릴 때 집어등을 밝히며 시작된다. 낚싯줄에 인조미끼를 여러 개 달고 추를 달아 조류에 흘리면 불빛에 모여든 한치가 붙는다. 하루에 못 잡으면 10마리, 잘 잡으면 100마리도 잡는다. 집어등을 20~30개씩 밝힌 전업 어선은 동력 물레 여러 개로 동틀 때까지 밤새 100~150㎏을 잡아 하루 300만원씩 번다. 그들은 좋은 포인트를 차지하기 위해 하루 종일 닻을 내리고 자리를 지킨다. 동네 낚시꾼들은 낮에 농사, 목수 일 등 본업을 하고 저녁에 배를 타고 나가 자정 넘어 철수한다. 다음 날 오전 6시면 다시 본업이 시작된다. 바다만 잔잔하면 매일. 미치지 않고서야.

지난주 딸 가족이 집에 왔다. 애들이 온 날 밤 11시 한 친구가 집으로 한치 한 봉지를 가져왔다. 이튿날은 새벽 1시30분 다른 친구가 20여 마리를 집에 놓고 갔다. 자녀가 온다니까 밤잠 못 자고 잡은 한치를 애들 먹이라고 놓고 간 것이다. 육지에서 온 친구의 자녀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대접이었다.

한치는 다리가 한 치 정도로 짧아 붙은 이름이다. 오징어에 비해 맛이 담백하고 부드러워 고급 식재료로 쳐준다. 가늘게 채 썰어 회나 물회로 먹고 데쳐먹거나 구워먹는다. 통찜이나 통구이가 맛있다. 인터넷 쇼핑에 제주한치 냉동 2마리 200g이 8900원, 8마리 3만5900원 등으로 나온다. 싸지 않다.

지난겨울 동네 가까운 친구의 제사에 초대받아 간 적이 있다. 제사상에는 우리가 늘 잡던 생선들이 차려져 있었다. 동행한 친구들과 밥상을 받았는데 그 상에 한치 초무침이 올라왔다. 물었더니 지난해 여름 남편이 잡은 한치를 냉동 보관한 것이란다. 소라젓도 있었다. 소라는 갓 잡은 것이지만 소라젓을 무칠 때 들어가는 성게알은 지난해 봄 것이다. 역시 이날을 위해 보관했다. 제주도 어머니들은 일 년에 여러 차례 오는 제사나 명절을 위해 여름에 잡은 한치를 이렇게 다듬어 보관한다. 그렇게 귀하게 여긴다.

박두호 전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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