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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희망의 사람들] 사람만 분단된 게 아니었네… 북녘 향해 짝을 부르는 산양들

강원도 양구군 동면 산양·사향노루증식복원센터에서 산양 한 마리가 바위에서 망을 보듯 서 있다. 바위는 나무에 올라가는 재주가 없는 산양에겐 가장 안전한 곳이다.

구름 걷힌 여름 산은 푸르렀다. 그 아래 경사진 풀밭에선 산양들이 풀을 뜯고 있었다. 곳곳의 검은 바위 위에도 산양이 망을 보듯 서 있는 게 눈에 띄었다. 해가 막 중천에 떠오른 때라 더위를 참지 못한 산양들은 숲속으로 들어가 쉬고 있었다.

6월 말 강원도 양구 동면 산양·사향노루증식복원센터를 다녀왔다. 산양은 멸종위기에 처해 1968년 천연기념물 제217호로 지정됐다. 산양을 살리기 위해 양구군은 2007년 동면 팔랑리 일대 19만8000㎡를 산양보호구역으로 정하고 산양증식복원센터를 설립했다. 2016년 양구에서 사향노루(천연기념물 제216호)가 최초로 발견되면서 이 동물도 보호·복원 대상으로 추가됐다. 센터의 목적은 산양의 안정적 서식과 보호다. 밀렵 위기에 빠진 산양을 구조해서 보호하고 유전자원 분석을 통해 증식 기술을 연구하며 서식지 등을 집중 모니터링한다. 이곳에선 47마리의 산양이 야생의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자생력을 기르며 보호받고 있다. 지난해 가을 민간인통제지역에서 ‘돼지 올무’에 걸려 다리를 다친 채 구조된 산양도 이곳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이곳에서 일하는 조재운 센터장과 안재용 주무관 등 6명의 공무원에겐 ‘산양 보안관’이란 별칭이 붙었다.

산양과 함께 포즈를 취한 안재용 주무관.

산양은 염소와 닮았지만, 가슴에 반달 모양의 흰 무늬가 있고 뿔의 모양이 다르다. 영어 명칭(long-tailed goral)에서 보듯 긴 꼬리가 달렸다. 흰색의 긴 꼬리는 생존을 위한 수신호로 쓰인다. 치켜들면 흰색이 더 희게 보여 이를 신호로 새끼 산양은 엄마를 따라가고 똘마니들은 대장을 따라간다.

새끼 산양이 어미 산양과 함께 자신이 태어난 바위 근처에서 노는 모습.

초식동물인 산양은 경사가 급하고 암벽으로 이뤄진 숲에 서식한다. 나무에 올라가는 재주가 없는 산양에겐 바위만큼 안전한 곳이 없다. 호랑이 담비 스라소니 등 천적을 피하기 위해 바위와 같은 보호색을 한다. 산양의 발굽은 찰고무처럼 말랑말랑해 바위를 타도 미끄러지지 않는다.

센터는 최대한 야생의 조건을 살려서 지었다. 크고 작은 바위가 널려 있는 오래 묵은 밭에 울타리만 쳤을 뿐이다. 산 정상 부근은 나무가 빽빽하다. 산양이 보호 기간을 끝내고 자연으로 돌아갈 때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다. 풀밭 옆 숲은 아침저녁 풀을 뜯어 먹은 산양들이 낮에 햇빛을 피해 먹이를 되새김질하면서 에너지를 충전하는 장소다. 숲에는 산양의 습성이 남긴 흔적이 곳곳에 있다. 가려운 뿔의 각질을 벗겨내려고 뿔질을 한 산초나무는 반질반질했다. 같은 자리에서만 똥을 누는 산양의 ‘똥자리’에는 커피콩보다 큰 똥들이 모여 있었다. 산양이 늘 앉아서 쉬는 자리는 땅이 맨질맨질했다. 산양이 새끼를 낳는 ‘출산 바위’도 있었다. 바위 아래가 움푹 파여 숨기에 좋아 보였다.

우리나라에선 ‘고려사’에 최초로 기록이 나오는 산양은 궁에서 기르던 진기한 동물 중의 하나였다. 조선시대에는 임금에게 진상한 토산품이었다. ‘향약집성방’ ‘고사신서’ 등 고문헌에 따르면 산양의 뿔은 혈압강하제 해열제 강심제 등의 약재로 쓰였다. 쓸개는 임산부의 산욕병발증을 막는 약재로 좋았다. 이런 이유로 산양은 무분별하게 포획됐다.

조선시대 문헌인 ‘대동지지’(大東地志)에 양구에 산양이 분포한다고 서술돼 있을 정도로 양구는 전통적으로 산양의 안정적인 서식지였다. 사진은 산양·사향노루증식복원센터 초입의 입간판.

1970년대 이후 급격히 산업화되면서 바위와 암벽 등 서식지가 파괴되자 개체 수가 급격히 감소했다. 현재 남한에는 1000마리 정도가 서식하고 있다. 비무장지대(DMZ)에 300마리, 강원도 양구·화천의 민간인통제구역 등에 100마리, 울진·삼척 등지에 100마리, 설악산 오대산 속리산 등 백두대간에 500마리 이상이 서식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서식 장소가 냉전시대 무장공비가 출몰했던 오지나 산악지역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사람이 접근하기 힘든 곳이 산양에게는 낙원인 셈이다.

조 센터장은 “서식지 파괴와 밀렵이 멸종 위기의 가장 큰 원인이다 보니 역설적으로 사람이 접근하지 않는 DMZ 일원이 가장 안전한 서식지”라고 말했다. 이곳에서 증식한 산양들도 9월쯤 산양의 낙원인 DMZ에 방사한다.

산양의 안정적인 종족 번식을 위해선 남북교류사업이 필요하다. 서식지가 줄면서 100개가 넘던 남한 산양의 유전자는 4개 유형만 남았다. 조 센터장은 “유전자 유형이 단순해지면 쉽게 불임이 되고 기형이 나오는 등 종족 번식에 문제가 생긴다”면서 “산양의 멸종을 방지하려면 외부 유전자를 유입해 유전자 다양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남한 산양과 북한 산양이 교배해 유전자가 섞이면 생태적 다양성이 확대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북한에도 현재 묘향산 산양, 두류산 산양 등 세 지역의 산양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분단으로 사람의 교류만 막힌 게 아니다. 동물의 교류도 철조망에 가로막혔다. 사람만 금강산에서 만날 게 아니라 동물도 남북교류가 필요하다. “휴전선 일부에 문을 내서 남북 산양을 한 마리씩이라도 교류시키는 것이 그 첫걸음이 될 텐데….” 조 센터장의 바람이 실현됐으면 좋겠다.

후원: 문화체육관광부·한국관광공사

양구=글 손영옥 전문기자·사진 변순철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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