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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변할 수 있다에 초점… 100명 중 1명만 바뀌어도 좋아”

[창·작·가] 신형욱 만화가

신형욱 만화가 겸 책임 프로듀서가 지난 23일 서울 마포구 와이랩 사옥에서 만화책에 둘러쌓여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가 스토리를 맡은 웹툰 ‘스터디그룹’은 아시아권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최현규 기자

웹툰 제작사 와이랩에서 전속 작가로 활동하는 5년 차 만화가 신형욱(30)의 첫 웹툰 도전은 ‘꼴찌’로 남아있다. 그는 2015년 네이버웹툰 공모전에 낸 첫 출품작으로 처참히 무너졌다. 당시 누리꾼들로부터 받은 표는 723표, 지금도 정확히 기억한다. 어릴 때부터 만화가의 꿈을 키워왔고 재능도 있다고 자부한 그에겐 큰 충격이었다.

그랬던 그가 와이랩을 통해 작가로 데뷔해 태국과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권 국가에서 요일웹툰 1위에 오르는 등 인기작가가 됐다. 무엇이 달라진 걸까. 신형욱을 지난 23일 서울 마포구 와이랩 사무실에서 만났다.

신형욱은 첫 공모전에서 꼴등이라는 참담한 성적을 받았지만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제가 못한다는 걸 알게 됐고 그래서 학원을 찾다가 와이랩 아카데미가 만들어진다는 광고를 봤다. 현업에서 일하는 작가들이 가르친다는 얘기를 듣고 1기로 수강 신청을 했다”고 말했다. 우연히 찾은 그 학원은 ‘신암행어사’ 등으로 인기를 모았고 ‘일본 진출 작가 1세대’로 불리는 양경일·윤인완이 참여해서 만들었다. ‘슬램덩크’로 유명한 일본 만화가 이노우에 다케히코 등에게 극찬을 받은 작가들이다. 아카데미는 그들이 노하우를 전수하고 인재를 발굴하기 위해 만든 곳이다.

웹툰이 활성화되기 이전엔 만화가의 길이 아주 좁았다. 과거 잡지 중심의 시장에선 선택된 소수만이 작품을 연재할 수 있었다. ‘열정 페이’를 강요당하며 문하생 일을 한 사람들만이 겨우 데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이처럼 폐쇄적이고 권위적인 한국 만화계가 웹툰으로 완전히 달라졌다. 와이랩은 ‘가내수공업’에 가까웠던 만화계에 새로운 생태계를 조성했다. 무적핑크 작가가 ‘조선왕조실톡’, 기안84가 ‘패션왕’, 김풍 작가가 ‘찌질의 역사’ 등으로 와이랩에 참여했다.

신형욱은 작화보다 스토리텔링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와이랩 아카데미 내에서 자체 콘티(만화 가안) 공모전을 열었는데, 그때 윤인완 선생님께서 제 작품을 보고 같이하자고 하셨다. 그래서 스토리 작가로 일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2018년 8월 웹툰 ‘캉타우’의 스토리를 맡으면서 네이버웹툰에 데뷔했다. ‘캉타우’는 이정문 화백이 1976년 발표한 한국 슈퍼로봇 만화의 기념비적 작품인 ‘철인 캉타우’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윤인완·양경일 작가가 함께 참여한 대형 프로젝트로 ‘웹툰 블록버스터의 재탄생’이라는 평을 들었다.

신형욱을 만화가로 이끈 건 어린 시절 만화책과 살아온 기억들이다. 그는 “어릴 때 만화를 보다가 운 적이 자주 있다. 만화에서 느끼는 뜨거운 동료애와 성장하는 캐릭터들에 감동했다”며 “제게도 성장하고 성숙해지고 싶은 열망이 있었는데 만화를 통해 해소할 수 있었다. 주인공에게 대리만족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경험 때문인지 그가 제작하는 웹툰들의 초점도 성장에 맞춰져 있다. 최근까지 작업한 학원물 ‘스터디그룹’이 대표적이다. 신형욱은 “요즘 사람들은 참 냉소적인 것 같다. 막연한 희망을 싫어하고 현실적인 걸 선호한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라는 말도 같은 맥락”이라며 “그래서 저는 더 ‘사람은 변할 수 있다’에 초점을 맞추고 어려운 상황에 부닥친 사람들에게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려 한다”고 말했다.

‘스터디그룹’에서 주인공 윤가민은 공부는 못하고 선천적으로 싸움만 잘하는 캐릭터다. 그래도 공부를 잘해 대학에 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다. 깡패소굴 유성공고에서 교내 유일의 스터디그룹을 만들어간다. 교내 ‘일진’이나 ‘조폭’을 미화하며 10대의 인기를 끌어온 작품들과 장르는 비슷하지만, 학업과 현실에 지친 학생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전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신형욱은 “가민이 열심히 공부해도 성적이 저조하다는 설정이기 때문에 노력 끝에 성적이 오르는 건 굉장한 변화”라며 “주인공 외의 인물들도 제각각 변화를 향한 미션이 있고 그들 모두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조금씩 성장하고 변한다”고 말했다. 이어 “재미를 1순위로 둔다. 주인공이 적을 쉽게 제압하는 설정으로 독자가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며 “재미 안에 메시지를 넣는데, 그러면 100명 중 1명 정도는 변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신형욱 만화가 겸 책임프로듀서가 네이버웹툰에서 연재 중인 ‘스터디그룹’의 포스터. 주인공 윤가민(가운데)은 깡패소굴 유성공고에서 교내 유일의 스터디그룹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와이랩 제공

지난 4월 시즌1을 마치고 휴재 중인 ‘스터디그룹’은 네이버 웹툰을 통해 해외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연재 당시에는 태국과 일본에서 요일웹툰 1위에도 올랐다. 연재가 끝난 지금도 일본에서는 남성독자 중 3위, 중국에서는 4위다. 해외에서 네이버웹툰을 보는 사람은 지난해 12월 기준 7200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신형욱은 “같은 동양이고 교복 입는 문화가 비슷해서 인기를 끈 게 아닌가 싶다”며 “K팝으로 한국문화에 관심을 가진 분들이 늘어난 덕분도 있다. 제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해주시는 분 10명 중 7명이 외국인인데, 하나같이 K팝 팬들”이라고 설명했다.

신형욱은 이제 와이랩에서 후배 스토리작가들의 프로듀싱까지 맡고 있다. 미국 마블 어벤저스처럼 와이랩이 만든 멀티버스인 ‘슈퍼스트링’과 ‘블루스트링’에서 새로운 작품의 스토리라인을 검토하고 피드백을 주는 협업과정이다. ‘슈퍼스트링’이 한국판 슈퍼히어로들의 이야기라면, ‘블루스트링’은 학원물 캐릭터들의 이야기다.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면 그 안의 캐릭터를 다양한 작품에서 만날 수 있다. 한국 웹툰계에서 새로 시도하는 협업방식이다.

신형욱은 “스토리 작가의 콘티가 논리적으로 어긋난 부분은 없는지, 전개가 산으로 가지는 않는지를 보고 잡아준다”며 “‘독자에게 친절해야 한다’고 늘 강조한다. 웹툰 매체 특성상 스크롤을 빠르게 넘기다 보니 친절하고 알기 쉬운 직관적인 전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형욱은 웹툰에 도전하는 후배들에게 “만화의 전성기는 지금”이라고 말했다. 그는 “만화책을 숨어서 봐야 하는 시절도 있었는데 지금은 웹툰 작가에 대한 인식이 좋다. 웹툰을 보는 데도 거리낌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신입 작가를 뽑을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건 ‘만화를 많이 봤는지’다. 만화도 연출이 중요하다. 카메라 워킹과 대사, 스크린 연출 등 웹툰만의 문법이 자연스레 배어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신형욱을 오늘로 이끈 만화의 매력은 뭘까. 그는 “만화라서 허용되는 일들을 좋아한다”며 “어렸을 때는 누구나 말도 안 되는 걸 많이 상상하지 않나. 만화에서는 그런 일들이 실제로 일어난다”며 수줍게 웃었다.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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