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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생태탕 또 끓는다

임성수 정치부 차장


지난 4월 서울·부산시장 재보선에서 집권 여당의 네거티브 캠페인은 ‘생태탕’이었다. 여당은 오세훈 서울시장이 2005년 서울 내곡동 처가의 땅 측량 현장에 있었다는 어느 생태탕 식당 주인의 폭로를 근거로, 오 시장을 거짓말쟁이로 몰아붙였다. 친여 방송인인 김어준씨가 제보자의 입을 빌려 생태탕을 띄우자, 여당이 이를 받아 선거기간 내내 신물이 날 때까지 우려먹었다. 익명의 제보자는 생태탕을 먹으러 온 오 시장이 흰 바지를 입었고 페라가모 구두를 신었다는, 무려 16년 전의 장면까지 생생히 기억해 내 드라마 같은 내러티브를 완성했다. 박원순 전 시장의 성범죄로 다시 치러진 서울시장 선거임에도 여당은 반성 없이 오 시장이 생태탕을 먹었느니 안 먹었느니를 선거 의제로 만들었다. 네거티브에 올인한 여당에 돌아온 건 역대급 참패였다. 생태탕의 쓴맛이었다.

대선 레이스가 본격화되자마자 이번엔 ‘X파일’과 ‘쥴리’다. 야권 대선 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 관련 의혹을 모은 ‘X파일’이 있고, 그중엔 윤 전 총장 부인 김건희씨의 사생활과 관련된 내용이 있다는 것이다. 급기야 김씨가 직접 나서서 “제가 쥴리니, 어디 호텔에 호스티스니, 별 얘기 다 나오는데 기가 막힌 얘기”라고 직접 반박하는 일도 벌어졌다.

생태탕에서 배운 것일까? 여당은 아직 본격적으로 ‘쥴리’를 언급하진 않는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윤석열의 수많은 사건에 대한 파일을 차곡차곡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시중의 X파일과는 관계없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여당이 X파일에 완전히 미련을 버린 것도 아니다. 대선 주자인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한 인터뷰에서 “쥴리라는 인물에 대해 들어봤냐”는 진행자 질문에 “들어봤다”며 “이걸 방송에서 제가 다 말씀드리긴 어렵다. 대선 후보라는 건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 친구 관계 이런 게 다 깨끗해야 되지 않나”라고 했다. 사실 확정은 하지 않으면서, 슬쩍 냄새만 풍긴 것이다. 핵심 사정기관을 총괄하는 법무부 장관을 지낸 정치인이 “들어봤다”고 하는 순간, ‘쥴리’는 있음 직한 사실, 그럴듯한 소문으로 둔갑할 수 있다.

‘쥴리’는 겨우 시작일지 모른다. 대선이 다가올수록 온갖 종류의 네거티브가 판을 칠 공산이 크다. 특정 진영의 유튜버들은 “기성 언론이 보도하지 않는 특종이 있다”는 생태탕식 네거티브를 시작할 것이다. 실제로 ‘윤석열 X파일’ 가운데 하나도 친여 채널인 ‘열린공감tv’가 작성했다. 여야 대선 후보가 접전 중이고, 유튜버 등 각 진영의 스피커들이 넘쳐나는 상황을 감안하면 이번 대선은 전례를 찾기 힘든 네거티브전이 될 수도 있다. 유사 언론들은 대선이라는 대목을 맞아 ‘카더라’ 보도를 하거나 “나의 의혹 제기가 사실이 아니라는 걸 네가 입증하라”는 적반하장 보도를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 유권자들이 이런 흑색선전에 귀를 기울일수록 선거는 더욱 진흙탕에 빠진다.

국정을 책임진 여당부터 네거티브를 자제했으면 한다. 여당은 ‘쥴리’에 대해 알아보고 싶은 강력한 유혹이 들 때마다 재보선 생태탕 캠페인의 쓴맛을 되새기는 게 좋겠다. 야당도 마찬가지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범여권에서 획책하는 비열한 네거티브에는 대응을 최소화하겠다”고 약속했다. 여권 유력 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가 이미 사과한 ‘형수 욕설’ 등에 대해 더 파헤치거나 조롱하지 않는 게 그 약속을 실천하는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유권자의 판단이다. 어떤 후보가 그럴 듯한 거짓말을 퍼트리는지, 검증을 가장한 네거티브에 골몰하는지 냉정하게 가려내고 경고 카드를 꺼내들 때 생태탕 수준의 네거티브도 잦아들 것이다. 식어 빠진 생태탕을 걷어찰 수 있는 힘이 유권자에게 있다.

임성수 정치부 차장 joyls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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