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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논단] 사법 개편이 개헌 논의의 시작점 돼야 한다

신봉기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공법학)


제헌헌법 이래 73년이 지났음에도 개헌은 여전히 대통령선거 단골 메뉴다. 국회에 헌법을 맡겼던 제1·2공화국 때도, 국민투표에 헌법을 맡겼던 제3공화국 이후 지금까지도 의원내각제 주장이 사그라들지 않는 것은 우리 체제의 불안정성을 의미한다.

돌이켜보면 우리 개헌사(史)는 발췌개헌, 사사오입 개헌, 유신헌법, 긴급조치, 국가보위입법회의(국보위) 등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치욕의 기록을 가진 ‘피의 역사’였다. 오로지 권력 장악을 위한 통치기구 중심의 논쟁이 이어졌고 승자독식의 제왕적 통치로 점철됐다. 그런데도 국민은 피로써 얻은 국민투표에서조차 매번 새로운 제왕적 헌법에 압도적 지지를 보였다. 1972년 유신헌법에는 유권자 91.9% 투표에 91.5% 찬성을, 1980년 전두환 헌법에는 95.48% 투표에 91.6% 찬성을 보였던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제5공화국 출범 직후 국보위는 유신헌법 당시 긴급조치 내용을 대부분 법률로 수용했고, 정당 재편과 참정권 제한으로 사실상 1당 국회를 만들어 야당 정치인들의 활동을 제한했다. 또 기본권 제한과 사법부 억압으로 재판 독립성이 부정되는 상황이 계속됐다. 치욕의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현 정부에서 절대다수 의석의 여당이 보여준 입법 폭주, 임명 절차에 하자 있는 각료들의 지속적 임명 강행, 권력 핵심부가 개입된 각종 권력형 비리와 검찰 수사권 박탈 등은 총검만 들지 않았지 과거보다 더 심하다는 평가까지 받는다.

‘헌법주의자’라는 말 한마디로 유력한 대권후보가 되는 현실은 집권 세력의 헌법 무시를 극명히 방증한다. 절대다수의 범여권 정당에 의해 악법이 제정돼도 위헌 선언조차 하지 못하고, 위헌 법령에 의한 행정권 남용에도 합법적·합헌적 구제는 기대하기 어려운 지경이다. 현 정부 집권 후 가장 먼저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장악을 시도했으니, 결과만 놓고 본다면 5·16 군사쿠데타 직후 국가재건비상조치법으로 국회 해산, 헌법재판소 기능 정지 등 헌법의 무력화와 별로 다르지 않다.

이 시점에 개헌 논의를 시작한다면 적어도 최고재판소인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조직 개편만이라도 실현되기를 기대한다. 2017년 진보장기집권플랜의 최우선과제 중 하나가 ‘사법부 개혁’임을 볼 때, 이미 정권 초기에 양승태 대법원장을 사법행정권 남용으로 구속시키고 법원 내 진보단체의 회장을 지낸 김명수 춘천지방법원장을 대법원장으로 파격 발탁한 때부터 대법원 장악은 현실화됐다. 헌법재판소 역시 이선애 재판관을 제외한 모든 헌법재판관이 현 정부에서 임명되어 공수처법 등 정치적 사건에 대한 결론은 이미 예견 가능했고 실제로도 거의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이미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개헌은 적어도 현행 대통령제하에서 대통령 단임제 폐지 외에 두 최고재판소 구성방식의 개혁이 요구된다. 먼저,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을 위해 최고재판관 자격을 개방해야 한다. 특히 정치적 성격이 강한 헌법재판관의 경우 ‘법관의 자격’을 삭제함으로써 외교관·법학교수 등 비법조인의 임명도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자격개방은 이미 현 정부뿐 아니라 과거에도 여러 차례 검토됐던 사항이다. 또한 임명권자로부터 독립을 위해 최고재판관 임명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재판의 공정성 확보를 위해서는 단임제, 임기연장, 비정년제를 채택해야 한다. 독일과 이탈리아는 12년, 스페인 및 프랑스는 9년 임기의 단임제다. 정년이 68세인 독일을 제외하고는 모두 임기가 보장된다. 미국 최고재판관은 종신직이다.

이뿐만 아니라 최고재판관 자격요건에 대한 최소한의 선언적 규정도 필요하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 재판관 임명을 앞두고 재판관에게 요구되는 덕목으로 “인간 존엄성, 수정 같은 순수함, 의회와 언론에서 벗어난 창조적 사상, 객관성·중립성, 부분적으로 사생활의 금욕적 포기” 등을 제시한 훔멜 릴예그렌(Hummel-Liljegren) 교수의 글은 우리 최고재판관들의 자격요건을 논함에 있어서도 숙고할 가치가 있다.

개헌은 국민과 국가를 위한 헌법체제의 구축을 목표로 해야 하기에 현행 대통령제하에서 일부 개헌을 통한 개선으로 해법을 찾는 것이 옳다. 더 이상 집권연장이나 정권교체에 혈안이 된, 권력장악을 위한 이해타산적 셈법으로 통치기구 개헌을 도구화해서는 안 된다.

신봉기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공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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