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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점령군

이흥우 논설위원


연합군으로 2차 세계대전에 함께 참전한 미군과 소련군은 1945년 일제 패망 후 나란히 한반도에 진주한다. 전승국이 제멋대로 그은 38선을 기준으로 남쪽엔 미군이, 북쪽엔 소련군이 주둔했다. 미군에 앞서 진주한 소련군은 짐짓 ‘해방군’ 행세를 했다. 북한 점령을 담당한 극동군 제25군 사령관 이반 치스차코프 대장은 8월 26일 평양비행장에 첫발을 내디딘 뒤 비행장에 모인 조선인들을 향해 “우리는 정복자가 아니라 해방자로서 이곳에 왔다”고 연설했다. 치스차코프 이름으로 발표된 소련군 포고문 1호도 표면상 조선에 우호적이었다.

이에 비해 미군의 태도는 매우 고압적이었다. 미군은 9월 9일 태평양방면 육군총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 명의로 발표한 포고문 1호에서 스스로를 ‘점령군’으로 규정했다. 맥아더는 ‘조선 인민에게 고함’으로 시작하는 포고문에서 “본관의 지휘 하에 있는 승리에 빛나는 군대는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 영토를 점령했다”고 선언한다. 이밖에 “점령군에 대한 반항 행위나 질서를 교란하는 자는 가차없이 엄벌에 처할 것”이라고 경고하는 등 포고문엔 ‘점령’이라는 표현이 여러 번 등장한다.

이재명 경기지사의 ‘미 점령군’ 발언을 둘러싸고 뜬금없이 역사논쟁, 색깔논쟁이 불붙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황당무계한 망언’이라며 이 지사를 강하게 비난하고 나서면서 해방전후사가 강제소환됐다. 윤 전 총장과 야당의 비난에도 이 지사는 “38선 이북에 진주한 소련군과 이남에 진주한 미군 모두 점령군이 맞다. 저는 소련군을 해방군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다”며 자신의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승만, 김대중 대통령도 공식적으로 점령군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고 한다. 역사학계에서도 통용되는 표현이기도 하다. 당시의 미군과 6·25 전쟁 이래 남한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은 성격이 확연히 다르다. 극렬 좌경이면 모를까 지금의 주한미군을 점령군으로 여기는 국민은 없다. 무엇보다 미군 스스로 점령군이라 했는데 우리가 “아니다”하는 것도 좀 우습다.

이흥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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