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피니언 > 칼럼 > 이동훈의 이코노 아웃룩

[이동훈의 이코노 아웃룩] OPEC 맹주 사우디에 태클 건 UAE… 불붙은 유가에 ‘기름’


석유 가격을 쥐락펴락하는 중동 지역 정세가 심상치 않다. 지난해 3월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의 감산정책을 둘러싼 갈등으로 원유가격 폭락사태가 빚어졌다면 이번엔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이 사우디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어 유가불안 요인으로 등장했다. 가뜩이나 원자재 값 폭등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유가의 고공행진은 코로나19 사태를 딛고 경기회복을 위해 기지개를 켜려는 세계경제에 발목을 잡는 주범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산유국 맹주’ 자리 위협받는 사우디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OPEC 주요산유국 연합체인 OPEC+는 지난 1일부터 이틀간 정례회의를 열었으나 증산합의에 실패했다. 대부분의 OPEC+ 국가들은 8월부터 5개월간 하루 40만 배럴 증산하고 기존의 감산정책 기간을 2022년 4월 대신 올 12월에 종료하는 데 동의했다. 하지만 UAE가 자국의 생산원유를 증산 또는 감산하는 기준선을 높여주지 않으면 감산기간 연장에 동의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결론을 내지 못했다.

이 소식에 서부텍사스원유(WTI)가 2% 이상 올라 배럴당 75달러를 돌파했다. 2008년 10월 이후 13년만의 최고치다. WTI는 이미 올해 초부터 경기회복세를 반영한 수요 급등세를 반영해 57.8%나 올랐다.

UAE는 자국에 할당된 원유의 기준선 320만 배럴에 맞출 경우 석유 생산을 다른 나라들 평균치인 22%보다 훨씬 많은 35%나 줄여야 한다며 기준선을 380만 배럴로 높여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사우디와 러시아의 경우 실제 생산량과 기준선의 편차는 5%에 불과하지만 자국은 18%로 훨씬 높은 감산량을 할당받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석유카르텔의 맹주격인 사우디는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4월 러시아와의 갈등을 마무리하고 하루 590만 배럴 감산합의 때 UAE가 기준선 320만 배럴을 인정해 놓고 이제와서 수정을 요구하는 것은 타국과의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와 블룸버그 통신 등은 UAE가 그동안 메이저 정유회사를 끌어들여 원유 증산을 위한 시설 투자를 늘려 생산능력이 향상됐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잘못된 기준선 배정만 탓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UAE가 OPEC+ 결정에 딴지를 걸고 나오는 것은 전통 우방국인 사우디와의 외교관계가 악화되고 있는 것도 한몫하는 것으로 보인다. UAE가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중재 하에 이스라엘과 외교관계를 맺은 것이 두 나라의 간극이 벌어진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사우디는 이에 보복이라도 하듯 지난 4일 갑자기 UAE가 주로 선택한 중국산 백신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어 UAE 여행을 불허하는 조치를 발표했다.

OPEC+는 현지시간으로 5일 오후 3시 정례회의를 속개했지만 UAE의 태도가 바뀔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관측통들은 UAE의 요구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OPEC를 탈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하고 있다. FT는 UAE가 원유 증산에 투자해 온 이유가 원유 활용분야를 다각화하고 자국산 원유를 두바이유처럼 벤치마크(기준원유)로 활용할 계획까지 세우고 있음을 들었다.

국제유가와 경기의 복잡한 함수

이번 정례회의에서 제시된 올 8~12월 하루 40만 배럴 증산은 지난해 590만 배럴 감산 규모를 감안하면 ‘새발의 피’다. 지난해 합의한 590만 배럴 감산 기간을 내년 4월에서 12월로 연장하려는 점을 고려할 때 원유가격 안정 효과를 기대하기보다는 일종의 생색내기에 불과한 셈이다. 지난해 코로나19로 인한 원유 수요 감소로 원유 및 가스 생산 업체들이 석유화학 공정에 대한 투자를 30% 이상 줄인 것도 원유증산 속도를 낼 수 없는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사우디 입장에선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계산한 복잡한 속내를 읽을 수 있다. 사우디는 그동안 낮은 유가로 재정균형을 맞출 수 없었다. 따라서 사우디의 재정균형 유가가 배럴당 60~70달러 선인 점을 감안할 때 그동안의 낮은 원가까지 보상받기 위해서는 현재의 75달러 선보다 10~20달러 이상 유지해야 한다.

미국과의 핵협상을 기다리고 있는 이란이 경제제재가 풀려 원유시장에 복귀할 경우 하루 100만 배럴이 추가공급될 수 있음도 계산에 넣어야 한다. 코로나 변이 바이러스가 확산일로에 있는 것도 섣부른 증산을 망설이게 하는 요인이다. 이런 상황에서 UAE의 돌출 행동은 사우디의 원유가격 책정 정책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 뱅크오브어메리카 등 주요 투자은행들이 국제유가가 내년 여름까지 100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분석한 것은 UAE의 행동 이전에 나온 예상치였다.

4일 독립기념일을 기해 성공적인 코로나 방어를 선언하고 본격적인 경기 활성화를 꾀하고 있는 미국의 조 바이든 행정부도 국제유가의 세자릿수 돌파를 막기 위해 OPEC에 압박을 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백신 보급으로 점차 여행과 무역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항공업계와 해운업계 입장에서도 비용의 25~60%를 차지하는 원유 가격 급등은 경영개선에 찬물을 끼얹는 격이 될 수 있다.

원유값이 치솟을 경우 전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신재생 에너지로의 이행 속도를 부추길 수 있다는 점도 아직 원유 의존도가 높은 사우디로선 부담이다. 오일 메이저들 역시 투자자들로부터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거나 신재생산업으로의 전환을 요구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동훈 금융전문기자 dhlee@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