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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구 칼럼] 이재명 지사가 이육사 찾은 이유

대권 출사표 후 이육사문학관
방문은 윤석열 겨냥한 행보

친일 청산, 미 점령군 발언은
대선판 퇴행시킨 잘못된 선택

케케묵은 냉전 시대 이분법
되풀이하는 건 분열 자초하고
실익 놓치는 과거 연좌제


이재명 경기지사가 지난 1일 경북 안동을 찾은 건 예상 가능한 선택지였다. 대선 출사표를 낸 직후 고향에 인사하고 선친 묘소를 찾은 것은 특히 보수성 강한 안동의 민심을 고려할 때 빼놓아서는 안 될 절차의 하나다. 경북행은 그가 이 지역 출신으로 여당에서 1위를 달리는 대권 주자임을 강조할 수 있는 선택이다. 다른 예비후보들과 달리 대구·경북에 확장성을 가졌다는 차별성을 부각할 수 있는 유력한 방법이다.

이육사문학관 방문은 다소 의외다. 안동에 여러 명소가 있는데 굳이 집안이 다른 이육사를 택한 것은 그 이유에 대해 곰곰 생각하게 만든다. 육사는 퇴계 이황의 14대손인 진성 이씨, 이 지사는 경주 이씨다. 이 지사는 육사의 딸인 이옥비 여사를 만나 “어릴 때 산 너머 예안에 살았다”며 “이육사 선생을 참 좋아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이 지사가 이육사를 찾은 데는 좀 더 깊은 정치적 함의가 있는 듯하다. 무엇보다 지지율 1, 2위를 다투고 있는 야권 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의식한 듯 보인다. 윤 전 총장은 지난달 29일 대선 출마 선언을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에서 했다. 지난 9일 퇴임 후 첫 공개 행보에 나선 곳은 우당이회영기념관 개관식이었다. 이런 행보는 검찰 압박에 맞섰던 기개를 상기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관측을 낳았다. 풍운아 행적이나 날카로운 시풍으로 우국지사의 지조를 상징하는 육사를 찾은 것은 이에 대응하려던 의도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안동행에서 이 지사가 내놓은 발언들은 좋은 선택으로 보기 어렵다. 유림과 만남에서 나온 영남 역차별 주장이 논란이 됐다. 이육사를 찾았을 때 발언은 더 큰 논란에 휩싸였다. 그는 “친일 청산을 못 하고 친일세력들이 미 점령군하고 합작해서 지배체제를 그대로 유지했다. 나라를 다시 세운다는 생각으로 새로 출발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이후 미 군정과 정부 수립 등의 과거사를 놓고 역사 인식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이 지사의 발언 역시 이육사처럼 윤 전 총장을 떠올리게 한다. 윤 전 총장은 출마 회견 때 일본 기자의 질문에 “외교는 실용주의, 실사구시, 현실주의에 입각해야 하는데 이념 편향적 죽창가를 부르다가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이 지사의 친일 청산 언급은 ‘죽창가’ 발언에 대한 에두른 차별화로 해석된다.

이 지사가 노이즈 마케팅을 염두에 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단번에 관심을 끄는 데는 성공했다. 윤 전 총장과 야권이 강한 비판을 제기했고, 여당 경쟁자도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그러나 70년 넘게 지난 과거사를 끄집어내는 게 적절했는지 의문이다. 김원웅 광복회장의 ‘소련군은 해방군, 미군은 점령군’ 발언의 일부를 차용함으로써 논란 확산을 자초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놓고 경쟁해야 할 대선 레이스에서 과거를 소환한 것은 매우 소모적이다. 4·7 재보궐선거 직전 더불어민주당 당헌·당규 개정 등의 사안에서 이 지사가 보여줬던 선두주자로서의 의연함과 사뭇 다른 모습이다.

지금은 한 달이 멀다고 새로운 기술이 쏟아져 생활 방식과 인식을 바꿔놓는 시대다. 미국이든 일본이든 중국이든 국익을 최우선으로 추구한다는 건 상식에 속한다. 우리도 국익을 지키기 위해 합종연횡한다. 냉전 시대 방식으로 과거를 나눠 현재와 직결시키는 ‘과거사 연좌제’는 퇴행적이다. 역사는 결코 잊어서 안 되며 민족의 정기를 지키는 것은 우리의 할 일이다. 하지만 과거에만 매여 있는 것은 대책 없는 노릇이다. 최장집 교수는 언론 인터뷰에서 “오늘의 국제정치 현실과 국내정치의 이념적 상황은 정치적, 법적 억압을 통해 운영되던 시기와 근본적으로 달라졌다”면서 “용공이냐 반공이냐, 친북이냐 반북이냐, 친일이냐 애국이냐 하는 이분법적 이데올로기적 대립을 그 자리에 대체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케케묵은 논쟁을 반복하는 것은 분열만 확대시킨다. 이제라도 일제 잔재를 청산하자는 시각은 아베 신조가 물러간 이후에도 한 치도 전진하지 못하는 한·일 관계에 실익이 되지 않는다. 1980년대식 인식에 집착해 분열만 거듭하다가는 시대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던 구한말이 되풀이될 수 있다. 이 지사의 발언은 대한민국의 다음 5년에 기대를 걸고 대권 경쟁을 지켜보는 국민에게 실망을 안긴다. 이를 빌미로 논란을 점점 과거로 이끌고 가는 야권도 마찬가지다.

김의구 논설위원 e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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