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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동철 칼럼]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세우는 공정


2030세대가 소환한 공정
유력 대선 주자들까지 가세해 시대 관통하는 가치로 떠올라
형식적 공정도 높여야 하지만 거기에 머무르는 건
우리 사회 불평등 구조를 고착화할 우려
승자독식 무한 경쟁 시스템을 적절한 성과 배분에 기반을 둔
공생 구조로 바꾸는 실질적인 공정에 더 많은 관심 기울여야

요즘 우리 사회에서 공정이란 단어가 자주 거론되고 있다. 2030세대가 본격 소환한 후 확산돼 지금은 너나 할 것 없이 공정을 얘기하고 있다. 여야 유력 대선 주자들까지 앞다퉈 공정 담론 경쟁에 열을 올리는 모양새다. 여야를 통틀어 지지율 선두를 다투고 있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지난 29일 출마 선언에서 “시대와 세대를 관통하는 공정의 가치를 기필코 다시 세우겠다”고 했다. 공정을 9번이나 언급했다. 더불어민주당 선두 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도 지난 1일 출사표에서 “역사적으로 공정한 나라는 흥했고 불공정한 나라는 망했다”며 공정을 13번 거론했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도 5일 출마 선언에서 “상처 받은 공정을 다시 세우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른 후보들도 자신이 공정 실현의 적임자임을 자부하고 있다.

공정이 시대를 관통하는 가치로 부상한 것은 한국 사회가 그만큼 불공정하다는 증거다. 반칙이나 특권으로 공정을 해친 사례들은 차고 넘친다. 각종 채용 비리, 스펙 조작과 부모 찬스를 활용한 부정 입학, 권력자 자녀들에 대한 특혜 의혹 등에 청년들은 분노했고 공정을 소리 높여 외쳤다. 그들의 요구는 정당하다. 공정한 경쟁을 방해하는 반칙과 특권은 사라져야 마땅하다. 그 누구든 합의된 규칙에 따라 당당하게 경쟁하고 결과에 승복해야 한다. 그게 공정한 사회다. 하지만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갈 필요가 있다. 심화되는 경제적 양극화와 이에 따른 사회적 갈등을 완화하는 게 시급한데 형식적 공정만으로는 해결이 난망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부모의 사회적·경제적 지위가 자녀의 학력은 물론이고 직업에까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서울대 등 소위 일류 대학 학생 가운데 상류층으로 분류되는 서울 강남 출신들이 압도적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단적으로 보여준다. 수저계급론이 회자되듯 신분이 세습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데 기계적 공정만 강조하는 것은 불평등 구조를 고착화하고 확대재생산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진정한 공정 경쟁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세운 다음에야 가능할 수 있다.

경쟁의 결과가 공정한지도 의문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 격차가 지나치게 크다. 고용노동부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해 6월 기준 300인 이상 기업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의 시간당 평균임금은 68.9%였다. 300인 미만 기업 정규직은 57.3%, 300인 미만 비정규직은 44.5%에 불과했다. 중소기업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2017년 기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가 일본보다 3배 이상 컸다. 경제 활동에 따른 이윤이 대기업과 정규직에 치우치게 분배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 한 공장에서 같은 차를 조립하는데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 하청업체 소속이냐에 따라 임금이 천차만별이라면 공정하다고 할 수 없다. 주52시간 근무제가 확대되고 대체휴일제가 도입돼도 5인 미만 사업장은 의무 적용 대상이 아니라 혜택을 누리지 못한다. 노동시장의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데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세대 간 불공정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10인 이상 사업장의 상용직을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를 보면 2017년 기준 30년 이상 근속자의 임금이 1년 미만 근속자의 3.11배였다. 일본의 2.37배를 크게 웃돈다. 연공형 임금 체계가 일반적이라 이런 상황은 4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게다. 성과 보상에 민감한 청년세대의 불만이 터져나오는 게 당연하다.

노동시장 양극화가 지속된다면 한정된 좋은 일자리를 둘러싼 무한 경쟁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과도한 임금 격차를 완화하고 취약계층 노동자의 후생복지 확대를 유도하는 정책을 통해 일자리의 질을 전반적으로 높여야 한다.

미국 비영리단체 소속 작가 앵거스 맥과이어가 평등(equality)과 공평(equity)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만든 그래픽은 우리 사회의 뜨거운 이슈인 공정이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키가 제각각인 3명이 담장 밖에서 야구 경기를 관람하는 그림인데, 획일적 평등이 아니라 약자를 더 지원해 실질적인 평등을 이뤄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제한된 파이를 놓고 벌이는 승자독식 시스템을 적절한 성과 배분에 기반한 공생 시스템으로 바꿔야 한다. 이런 흐름을 앞장서 만들어가는 게 바로 정치가 해야 할 일이다.

라동철 논설위원 rdchu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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