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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강에서] 서울극장과 ‘애마부인’

김준동 공공정책국장 겸 논설위원


벌써 4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생생하다. 중학교 때 중간고사를 마치고 학교에서 단체로 서울 충무로 영화관을 찾은 적이 있다. 당시는 시험이 끝나면 으레 단체로 영화를 관람하러 시내로 진출했다. 학생들의 머리를 식혀준다는 학교 측 배려(?)였던 것 같다. 상영 영화는 ‘벤허’였고 영화관은 대한극장이었다. 대한극장은 70㎜ 초대형 스크린과 THX사운드 시스템을 갖춰 영화팬들로부터 가장 사랑을 받았다. 충무로역에 내리는 순간에는 ‘BEN HUR’라는 거대한 영어 글자 아래 마차가 달리는 장면이 그려진 외부 포스터 크기에, 내부에 들어서서는 초대형 스크린 크기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70㎜ 초대형 화면의 ‘평생 잊지 못할 최고의 감동’이라는 문구도 어렴풋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만원사례라는 간판이 극장 앞에 내걸리기도 했다.

종로의 서울극장에 대한 추억을 생각하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벤허는 학교장 추천으로 공인돼 봤다면 1년여 뒤 이 영화관에서 상영된 영화는 나이를 속여 몰래 관람했다. 이 영화를 보기 위한 나와 친구들의 몸부림은 그야말로 처절하고 절박했다. 학생 티를 벗어나기 위해 가발까지 동원했기 때문이다. 또래 친구들도 이 영화를 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그런 시절이었다. 바로 한국 에로 영화의 대표작 ‘애마부인’이다. ‘청소년관람불가’였지만 변장을 잘한 덕분인지 우리는 1시간여를 무사히 숨죽이면서 스크린을 주시할 수 있었다. 정말 운수 좋은 날이었다. 짜릿한 감동으로 극장을 나서며 노래를 흥얼거리던 모습이 오버랩된다. 이후 서울극장에서 애마부인 시리즈가 잇따라 상영됐고 그럴 때마다 극장을 기웃거리던 학창 시절이 선하다. 추억의 장면들이다.

그래서인지 서울극장이 개관 42년 만에 역사 속에 사라진다는 뉴스는 씁쓸하다. 서울극장은 최근 홈페이지를 통해 “1979년부터 약 40년 동안 종로의 문화중심지로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서울극장이 2021년 8월 31일을 마지막으로 영업을 종료하게 됐다”며 “오랜 시간 동안 추억과 감동으로 함께해 주신 관객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공지했다. 오랜 세월 서울을 대표해온 영화관 가운데 하나로 나에게도 추억의 장소였던 곳이 사라진다니 여간 서운하지 않다.

지금이야 멀티플렉스(복합상영관)가 흔하지만 1980년대는 단관(單館)이 대세였다. 한 편의 영화만을 상영하는 개봉관은 대부분 서울 시내에 있었다. 단성사, 서울극장, 피카디리, 허리우드(이상 종로3가권), 스카라, 명보, 국도, 대한극장(이상 충무로권), 중앙(명동), 국제(신문로) 등이 10대 개봉관이었다. 1907년 설립돼 한국 최초의 영화로 꼽히는 ‘의리적 구토’를 상영한 단성사는 2005년 멀티플렉스로 재개관했으나 경영난을 넘지 못하고 2008년 문을 닫았다. 단성사는 2019년 한국 영화 탄생 100돌을 맞아 ‘단성사 영화역사관’으로 재탄생했다.

1953년 지어진 스카라극장은 2005년 문화재청이 근대문화유산 등록을 예고하자 소유자가 재산권 침해라며 반발해 극장 상징인 반원형 현관을 허물고 새 빌딩을 건축하며 사라졌다. 1913년 개관한 국도극장은 1999년 허물어졌고, 1958년 설립된 대한극장과 1960년 문을 연 피카디리는 멀티플렉스 지점으로 흡수돼 단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1969년 개관된 허리우드는 실버영화관으로 변신했고 국제(1992년), 명보(2008년), 중앙(2010년)은 폐관했다. 하나같이 거대 멀티플렉스에 자리를 내주고 쇠퇴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대도시 서울에 기억할 만한 영화관이 제대로 남아 있지 못한 현실은 안타깝다. 유서 깊은 극장의 보존은 어느 나라나 제도적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하다. 추억과 감동이 서린 영화관은 하나쯤 있어야 하지 않을까.

김준동 공공정책국장 겸 논설위원 jd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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