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째 파킨슨병과 씨름 중… 환자들에 희망 주려 인터뷰 응했죠”

[인터뷰 사이] 김혜남 정신분석 전문의

파킨슨병은 뇌 조직이 손상돼 손발이 떨리고 몸이 굳고 행동이 느려지는 희귀성 질환이다. 얼굴 표정이 없어지며 물과 음식을 넘기기 어려워지고 통증 피로 불면증도 나타난다. 김혜남 박사는 이 모든 고통과 싸우면서도 커피를 내려 손님을 대접하는 즐거움, 책을 쓰는 보람,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함으로써 얻는 행복감, 외손주들에게 멋진 할머니가 되고픈 소망에 대해 말했다. 윤성호 기자

“친한 동료가 제 성격이 ‘내숭적’이래요. 평상시에는 내성적인데 무대 위나 사람들 앞에 서면 확 달라진다고요.”

정신분석 전문의 김혜남(62) 박사는 인터뷰 내내 유쾌함을 잃지 않았다. 그러면서 자신의 유머는 “인생의 불합리하고 부당한 일을 웃음으로 껴안는 행위”라고 했다. 대표작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를 비롯한 9권의 책으로 130만부 넘는 판매고를 올린 베스트셀러 작가인 그에게 ‘인생의 불합리하고 부당한 일’이란 21년째 그를 옥죄는 파킨슨병일 것이다. 일상생활조차 어렵게 하는 불치병과 싸우면서도 여전히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샘솟는다는 그의 목소리를 전한다.

오랜만에 사회에 복귀하는 인터뷰라 그런지 어제 잠을 푹 못 잤어요. 2년 전에 ‘어른이 되면 괜찮을 줄 알았다’는 책을 내고 휠체어를 탄 채 강연했거든요. 몸이 떨리고 목소리가 안 나와서 “여러분, 이게 내 마지막 강연입니다. 와주셔서 굉장히 고맙고 나도 행복합니다”라고 고별인사를 하고 떠났어요. 그러고 나서 뇌수술을 했죠.

파킨슨병 증세가 시작된 지 23년, 진단받은 건 만 20년 됐어요.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하지만 파킨슨병을 앓으면서도 이렇게 활동할 수 있다고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려고 인터뷰에 응했어요. 처음에 남은 수명이 15~17년이라 했으니 저는 60을 못 넘기는 거였어요. 수술하기 전에는 팔다리가 제멋대로 움직이고 불면증으로 체중이 40㎏까지 떨어져서 정말 이러다 죽는구나, 그랬죠. 지금은 약을 1시간 반마다 하루 10번 먹어요.

파킨슨병은 대개 우울증과 치매가 같이 와요. 그러니까 이렇게 다시 인터뷰를 할 수 있다는 건 기적이거든요. 살면서 노력해도 안 되는 게 많죠. 그런데 노력해서 되는 것도 있거든요. 제가 운동을 정말 열심히 했어요. 머리에 침을 박아서 뇌에 전기 자극을 주는 수술을 받았는데 근육이 없으면 아무리 자극을 줘도 움직일 수가 없거든요. 제가 조금씩 좋아졌으니까 운동만이 살길이다,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자는 걸 알려주고 싶었어요.

한 발짝만 더… 가다 멈춰도 가본 만큼 나아

책 ‘오늘을 산다는 것’에 삽입된 ‘한 발짝’. 김혜남 박사가 직접 그렸다. ‘사람들이 나에게 묻습니다. 그러고 어떻게 사냐고요. 그럼 나는 되묻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냐고요.… 거기서 한 발짝 나아가는 것, 그것이 답입니다. 그렇게 한 발짝 한 발짝 나아가다 보면 어딘가 다른 곳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겁니다’라는 글이 붙었다. 김혜남 박사 제공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도 제 이야기가 희망과 위안이 됐으면 좋겠어요. 제 책들은 다 파킨슨병을 앓으면서 쓴 거예요. 입원 중에 쓴 책도 있어요. ‘오늘을 산다는 것’이라는 건데 제가 직접 일상을 그려 넣고 짧게 글을 쓴 그림편지 같은 책이에요. 제일 마음에 드는 건 ‘한 발짝’이라는 그림이에요. 일단 한 발짝씩 나아가면 된다는 거예요. ‘가다가 중지하면 아니 간만 못하다’는 옛말이 있지만 가다가 중지하면 아니 간 것보다 간 만큼 나은 거잖아요. 실패를 하더라도 그 길로 가면 안 된다는 걸 배울 수 있고요. 그런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나만 아픈 게 아니라는 메시지도요.

프로이트가 ‘선생님, 정상이 뭡니까’라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대답했어요. “약간의 히스테리와 약간의 편집증, 약간의 우울증.” 이걸 다 가진 사람이 정상이라는 거죠. 난 매스컴이 자꾸 무슨 증후군, 무슨 신드롬, 이렇게 이름 붙이는 걸 굉장히 우려해요. 모든 걸 병으로 만들기 때문에 스스로 극복할 기회를 박탈하는 거예요. 자기가 넘어야 할 산이 아니라 병원 가서 치료하고 위로받아야 할 대상으로 만들어버리거든요.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일어나듯이, 물에 빠졌다가 헤엄쳐 나오듯이 인생 사는 과정에 있는 굴곡이죠. 그러면서 수영도 배우고 달리기도 배우고 그러는 거 아니겠어요.

제 지론이 세상에 해결 못 할 일은 없다는 거거든요. 해결이 안 된다면 그건 해결점이 없다는 답을 찾은 거고요. 제가 고3 올라가던 때 한 살 위의 언니가 교통사고로 죽었어요. 굉장히 방황했어요. 인생은 무엇인가, 사람은 왜 사는가 고민했는데 답을 못 찾겠더라고요. 그래서 ‘죽을 때까지 찾아보자. 그래도 답이 없으면 답이 없는 게 답이다’라고 했어요. 답을 찾으려고 공부를 열심히 했죠. 그 덕분에 꽤 알려진 의사도 됐고요.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건 조언 아닌 이해

20대, 30대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냐고요. 늙은이 잔소리로 들릴 수 있는 말은 가급적 삼가야죠. 젊은 사람들한테 필요한 건 조언이 아니라 이해예요. 조언이야 책들 보면 다 있죠. 그런데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은 없거든요. 누군가 내 얘기를 들어주고 나를 이해해주면 문제를 헤쳐나갈 힘이 생겨요. 나를 야단치거나 잔소리하지 않고, 틀렸다고 얘기하지 않는 그런 사람이 있다는 믿음만 있으면 사람들은 다 헤쳐나갈 수 있거든요.

전 비트코인이 뭔지 아직도 이해가 안 되는데, 돈 벌 기회라고 젊은 사람들이 뛰어들었다는 게….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올라갈 수 없고 세상의 힘과 시스템은 너무 단단하고 내 자존감은 낮고 싸울 기력도 없고, 그런 무기력감이 사람들을 지배하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게 무력감이에요.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처럼 무서운 게 없거든요.

코로나 때문에 우울해하는 분이 많다는데, 우리는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어요. 그런데 인생이 행복하기만 하면 어떻게 살겠어요. 매일 웃고 살면 그 웃음이 웃음이겠어요. ‘인생을 축제처럼’이라지만 365일 축제를 하고 살면 우리는 다 탈진할 거예요. 사흘간의 축제를 위해 1년을 준비하잖아요. 그게 삶이에요.

‘쿠페씨의 행복여행’이라는 책 아시죠. 그 책을 쓴 프랑스 작가와 대담을 한 적이 있거든요. 그런데 남을 이겼을 때의 행복, 성취를 했을 때의 행복감, 이런 얘기를 해요. 그래서 제가 “우리는 행복한 사람 옆에 있어도 행복해진다. 우울한 사람 옆에 있으면 같이 우울해지고. 그래서 중요한 건 내가 누구를 이겨서 행복한 것보다 내가 남들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느냐 하는 게 내 행복을 더 키우는 일인 것 같다”, 이런 질문 아닌 질문을 한 적이 있어요. 저도 이제는 남을 행복하게 해줄 때라는 생각을 하고 다음 학기부터 고려대 의대 후배 4명에게 장학금을 후원하기로 했어요.

결국은 버텨서 살아남는 것

이 인터뷰로 다시 세상에 나가지만 예전처럼 강연을 하기는 어려울 거예요. 대신 예정된 책이 몇 권 있어요. 아, 이런 걸 쓰고 싶다, 머릿속에서 막 아이디어가 떠오르거든요. 그런데 이제 손이 뻣뻣해져서 키보드를 누르기 어려워요. 어떨 땐 핸드폰에 일정 입력하는 데도 30분이 걸리니까요. 한 시간 작업하면 이틀은 누워있어야 해요. 그래도 즐거워요. 병원에서 같이 일했던 간호사가 그랬어요. 책 쓸 때와 쓰지 않을 때의 저는 척 보기만 해도 다르다고요. 책 쓸 때는 눈이 반짝반짝하는데 책 쓰지 않을 때는 우울한 할머니 같다고요.

제 환자 중에 10년 넘게 만난 조현병 환자가 있어요. 불안해서 외출도 못 하던 환자인데 지금은 혼자 지하철을 타고 일도 해요. 정신분열증이 이렇게 좋아질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 같이 책을 쓰기로 했어요. 그다음엔 무용치료 하는 유분순 선생님 책을 도와줘야 하고요. 30년 지기인데 지금까지 저랑 같이 놀고 툭하면 여행 가자고 하는 좋은 친구죠. “내년까지 살아있으면 책 도와줄게” 그랬어요.

왜 그런 말을 하냐고요. ‘아, 내 생명이 꺼지는구나’ 이런 걸 느낄 때가 많아요. 전에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버킷리스트 열 가지를 책에 썼어요. 리스트의 맨 끝이 ‘조용히 온 데로 다시 가기’였어요. 죽음에 대한 준비가 돼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죠. 언젠가 죽음이 온다는 걸 여러 번 경험했지만 저도 그렇고요. 그래도 발병하기 전 40년을 의사로, 두 아이의 엄마로, 시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며느리로, 남들 60년 사는 것만큼 열심히 살았으니까 됐다, 여기서 더 욕심내지는 말자고 다짐해요. 물 흘러가듯이 흘려보내자, 이랬는데 결국은 ‘버티자’가 돼요.

버틴다고 말하는 게 굴욕적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버텨서 살아남는 법을 배운다는 건 누구도 폄하할 수 없는 피땀 어린 노력의 결실이에요. 저도 계속 버티고 있는 거고요. 저는 운이 좋아서 수술을 두 번 했어요. 우리나라에서 파킨슨병으로 두 번 수술한 사람은 제가 처음이래요. 제가 건강해져야 그런 수술이 더 발달할 거라는 생각도 해요.

몸이 좋아진다면 춤 한번 실컷

만약에 몸이 좋아진다면, 제 꿈은 춤 한번 실컷 추는 거예요. 제가 고대 댄싱퀸이었어요. 공기가 좋아서 그런지 제주도만 가면 상태가 좋아지는데, 딱 내리면 “나는 제주 스타일” 하면서 말춤도 춘답니다. 제 희망은 병이 천천히 진행돼서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이 조금 더 남아있는 거예요. 느리게 걷게 되면서 나뭇가지에 맺힌 물방울 사진을 찍는 새로운 취미가 생겼어요. 그런데 이제는 손이 더 떨려서 핸드폰 사진 초점을 맞출 수 없게 됐어요. 하지만 스마트폰에 그림을 그리는 즐거움은 아직 누릴 수 있거든요. 다시 나빠진다 해도 그때그때 누릴 수 있는 소소한 기쁨을 찾으며 살 거예요.

권혜숙 인터뷰전문기자 hskw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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