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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퇴출 기로에 선 ABC제도

김의구 논설위원


인쇄 매체의 발행부수를 검증하는 ABC제도는 19세기 말 광고 산업이 발전하면서 도입 필요성이 제기됐다. 광고주로서는 광고 효과와 직접 연관되는 발행부수에 대한 공신력 있는 정보가 요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체를 발행하는 입장에서는 부수 공개가 달갑지 않다. 1914년 신문사와 광고주 사이 협조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미국에서 최초의 신문부수공사기구가 탄생했다. 이후 시장경제가 성숙한 선진국에서부터 기구가 설립됐다.

우리나라는 60년대부터 제도 도입 논의가 있었으나 진전을 보지 못하다 89년 5월 한국ABC협회를 창립했다. 세계 23번째, 아시아에서 5번째였다. 2009년 국무총리 훈령이 개정돼 ABC 실사에 참여한 신문·잡지에 정부 광고를 우선 배정키로 한 뒤 ABC제도가 정착됐다.

ABC협회가 매년 실시하는 부수 공사가 시작되면 신문사 판매 조직에는 비상이 걸린다. 협회에서 나온 실사팀 눈 밖에 나지 않으려 초긴장한다. 유료부수를 1부라도 더 인정받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인다. 경쟁사들과 나란히 공표되는 부수 공사 결과는 자존심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ABC협회가 32년 만에 퇴출 기로에 섰다. 정부가 8일 2450억원대의 정부 광고 집행 시 협회가 조사한 부수 자료를 활용하지 않기로 했다. 매년 고액의 회비와 실사 비용을 부담하는 신문사로서는 회원 자격을 유지할 필요가 줄어드는 셈이다. 이번 조치는 협회의 조사가 부실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온 마당에 지난 3월 여당 의원들이 내부고발을 근거로 일부 유료부수의 조작 의혹을 제기한 데 따른 것이다.

ABC협회가 해체의 길을 걸을지, 혹은 의혹을 씻고 신뢰를 회복할지는 불분명하다. 어쨌든 신문 유통의 합리화와 광고 시장의 효율성을 위해 엄정한 매체량 조사는 필요하다. 정부는 ABC 부수의 대안으로 한국언론진흥재단 주관의 구독자 조사를 추진키로 했다. 그러나 구독률 조사가 만능은 아니다. 조사의 중립성과 공정성도 보장돼야 한다.

김의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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