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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경찰 사칭

손병호 논설위원


지난해 11월 ‘서울지방검찰청 김민수 검사’를 사칭해 취업준비생을 극단적 선택으로 몰고 갔던 보이스피싱 조직이 붙잡힌 일이 있다. 이들은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검사를 사칭해 돈을 가로챘다. 검사 이외에 사기꾼이 자주 써먹는 직업이 경찰과 기자다. 경찰이라고 속여 사생활을 캐거나 사건 해결을 빌미로 금품을 뜯는 범죄는 지금도 흔하다. 기자를 사칭해 보도무마 조건으로 돈을 요구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과거에는 정보과 경찰이 기자를 사칭해 집회현장에서 투쟁전략을 엿듣거나 채증을 하다 붙잡히는 일도 많았다.

최근에는 기자가 경찰을 사칭하는 일이 벌어졌다. MBC 취재진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부인 김건희씨 관련 취재를 하다 경찰을 사칭한 일이 들통난 것이다. 윤 전 총장 측은 지난 10일 강요와 공무원자격사칭 혐의로 이들을 고발했다. 그런데 기자 출신인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이 12일 방송에서 “기자가 경찰을 사칭하는 경우는 저희들 같이 나이든 기자 출신들에서는 굉장히 흔한 일이었다”고 말해 눈총을 받고 있다. 과거에도 그런 일이 드물었거니와 사칭은 그때나 지금이나 엄연한 범죄인데 기자 집단 전체를 매도한 셈이 됐으니 말이다. 지난 5월 영국 BBC가 자사 기자가 과거 다이애나 왕세자비를 속여서 인터뷰를 성사시킨 일이 드러났다면서 26년 만에 취재윤리를 어긴 일을 사과했었는데, 김 의원도 사과부터 하는 게 순서일 게다.

한국기자협회 윤리헌장에는 ‘취재 과정에서 정당한 방법을 사용하고 취재원에게 예의를 갖춰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굳이 윤리헌장을 들먹이지 않아도 부당하게 얻어진 ‘오염된 기사’는 아무리 공익적 목적이 크다 해도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렵다. 다국적 의류업체가 어린이 노동자들을 착취해 옷을 만들다 불매운동이 벌어졌듯 언론 소비자들도 취재 과정이 윤리적이지 않은 결과물은 보이콧해야 윤리의식이 깃든 취재물이 많아질 것이다. 기자들도 ‘덜 취재된 떳떳한 기사’가 ‘더 많이 취재된 비윤리적 기사’보다 낫다는 걸 잊지 말아야겠다.

손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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