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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을새김] 억만장자들의 우주전쟁

이영미 영상센터장


새까만 하늘에 붉은 점이 나타나더니 바닥으로 돌진한다. 이어 등장한 긴 화염꼬리. 붉은 점은 거대한 먼지구름과 함께 쿵, 십자과녁에 꽂혔다. 일론 머스크가 세운 우주탐사회사 스페이스X의 로켓 ‘팔콘9’ 착륙 순간이다. 우주로 갔던 로켓이 SF영화 속 한 장면처럼 완전히 몸을 틀어 귀환했다. 2015년 당시 팔콘9은 인공위성을 궤도로 쏘아올린 뒤 1단 추진체를 역추진시켜 수직으로 재착륙시켰다. 세계 최초의 궤도로켓 재활용이었다. 2018년에는 건물 23층 높이의 초대형 로켓 ‘팔콘헤비’가 2개의 추진체를 지구로 돌려보냈다. 테슬라 로드스터를 우주로 날려 세상을 들썩이게 한 그 이벤트. 이후 두 개의 점보 추진체는 푸른 하늘에 검붉은 불꽃을 내뿜으며 위풍당당하게 착지했다. 유튜브 조회수 1300만회가 넘는 레전드 영상이다.

제프 베이조스는 머스크를 향한 이런 열광이 못마땅할 거다. 로켓 재활용에 처음 성공한 건 베이조스의 블루 오리진이었다. ‘뉴셰퍼드’를 100㎞까지 올린 뒤 1단 로켓 회수에 성공했다. 머스크의 추진체가 착지 실패를 거듭하던 시기였다. 머스크는 한 달 뒤 가까스로 성공했다. 대신 훨씬 크고 무거운 로켓을 더 멀리, 더 세게 쏘아 올렸다. 이후 건건이 부딪친 둘의 라이벌전 결과는 머스크의 연승. 최근에는 29억 달러짜리 미국 항공우주국(NASA) 달탐사 파트너십까지 따냈다.

두 억만장자 라이벌이 그리는 우주 개척의 미래는 완전히 다르다. 머스크는 인간이 지구 너머 다(多)행성종으로 진화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나온 게 화성 식민지. 반면 베이조스는 오염산업을 내쫓고 지구를 청정 거주지로 보존하자고 주장한다. 외계 창고전략이랄까. 또 다른 우주모험가 리처드 브랜슨은 무중력 우주여행의 대중화라는 소박한 목표를 내세운다. 방식도 전통적이다.

브랜슨의 버진 갤럭틱은 우주선 하면 떠오르는 수직 이착륙 대신 모선(母船) 사이에 우주비행기를 끼워 하늘 위에서 추락시킨다. 비행선은 분리되자마자 자체 추진력으로 고도 80㎞까지 상승해 4분간 무중력 우주여행을 한 뒤 활공비행으로 귀환한다. 조금 높이 날았다고 우주여행이냐는 비판이 있긴 하다. 하지만 핵심은 지구를 바라보는 일. 브랜슨은 그게 각성체험이 될 거라고 주장한다. 자아를 깨닫는 게 의식의 핵심이듯 지구를 관조한 경험이 인간에게 종(種)으로서 자의식을 일깨울지 모를 일이다.

지난 11일 브랜슨의 민간우주관광 시험비행이 깔끔하게 성공했다. 20일에는 베이조스가 뉴셰퍼드를 타고 수직이착륙 우주관광에 참여한다. 블루 오리진의 유인비행은 처음이지만 15번의 시험발사에 성공했으니 리스크는 크지 않아 보인다. 곧이어 스페이스X가 국제우주정거장 숙박관광에 도전한다. 티켓이 630억원을 넘는 세기의 우주관광 패키지다.

퇴임 직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중국 SF소설 ‘삼체’를 읽은 경험을 전하며 “외계인이 막 지구를 침공하려는데 의회와의 하루하루 씨름이 참 하찮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우주 티켓이 아무리 저렴해진다 한들 이번 생에 내가 우주에 갈 일은 없을 거다. 전 세계 10억명이 극빈층인데, 아마존 직구에 쏟아부은 내 돈으로 베이조스가 초고가 우주여행을 한다는 사실이 유쾌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삼체’가 필요한 이가 백악관의 오바마뿐일까. 억만장자들의 우주 레이스를 지켜보며 오랜만에 고개를 한껏 뒤로 젖혀 하늘을 봤다. 그리고 감탄했다. 여배우 스캔들과 장모 비리, 부동산 욕망 같은 것들로 땅 위는 부글거리지만 그 와중에도 누군가는 희망을 품고 우주를 난다. 그들의 장대한 꿈에 기대어 나도 잠시 복작대는 지구를 벗어나는 호사를 누렸다. 나는 못 가는 어딘가로 떠나는 사람들. 그들에게 편견 없는 박수를.

이영미 영상센터장 ym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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