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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태 칼럼] 패거리 문화, 스폰서 문화


부패사슬 얽힌 검사와 스폰서
관행…가짜 수산업자 사건은
구태가 잔존하고 있음을 증명

사기꾼과 어울린 박영수 특검
낙마, 부장검사 경찰 조사로
권력층 부끄러운 민낯 드러나

부패 둔감한 끼리끼리 문화 탓
법무부 감찰 및 공수처 수사로
부조리 적폐 발본색원해야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별장 성접대 및 뇌물수수 사건 항소심 재판부는 지난해 10월 1심과 달리 유죄 판단을 내린 선고공판에서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이 재판은 10년 전의 뇌물수수에 대한 단죄에 그치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 검사와 스폰서의 관계가 2020년인 지금 우리나라 검찰에서 더는 존재하지 않는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검찰의 고질적 병폐인 스폰서 관행이 아직도 근절되지 않았을 가능성을 지적한 것이다.

검찰의 스폰서 문화는 뿌리가 깊다. 과거 검사와 스폰서는 향응과 금품 제공 등의 부패 사슬로 얽히며 공생 관계를 유지했다. 특히 검사의 지방 근무 시에는 지역 유력 업자들을 소개받아 끈끈한 관계를 이어오곤 했다. 물론 묵묵히 제 할 일을 해온 다수의 검사와는 상관없겠지만 조직 내부에선 이런 부조리가 횡행하며 카르텔이 형성됐다. ‘그랜저 검사’ ‘벤츠 여검사’ 사건 등은 김영란법(청탁금지법) 제정의 단초가 되기도 했다. 외부 감시와 개혁 등으로 이 악습이 요즘엔 자취를 감췄을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재판부 지적대로, 아니었다. 최근 드러난 가짜 수산업자 김모(수감 중)씨의 정관계·언론계 문어발 인맥은 스폰서 문화의 구태가 잔존하고 있음을 여실히 증명해준다.

국정농단 사건 수사로 만천하에 이름을 날린 박영수 특별검사까지 이 사기꾼과 어울리다 특검에서 물러나는 사태까지 발생했으니 어처구니가 없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을 지낸 박 특검 본인만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게 아니다. 특검팀에 파견됐던 후배 이모 부장검사(현재 부부장으로 강등)가 2019년 포항지청으로 전보되자 지역 사업가 행세를 하는 김씨를 소개해줬다. ‘지역 사정 파악에 도움을 받을 인물’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낯선 지방으로 발령 나면 지역 유지를 연결시켜주는 그들만의 품앗이 관행을 답습한 것이다. 그리고 거리낌없이 선물과 금품을 받았다. 박 특검은 ‘포르쉐 렌터카 제공’ 논란에 휩싸였고, 이 부장검사는 고급 시계와 자녀 학원비 등을 받은 혐의로 경찰에 의해 검사 사무실 압수수색까지 당하는 초유의 상황을 초래했다. 결국 이 부장검사는 그제 경찰 조사를 받았다. 윤리의식 부재를 드러낸 권력층의 민낯이다.

은밀한 접대 문화도 그들만의 리그에서 빼놓을 수 없다. 청탁금지법 시행에도 검사 접대 의혹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현직 검사 3명이 라임자산운용 로비 의혹의 피의자로부터 2019년 룸살롱에서 술접대를 받은 사실이 드러난 게 지난해 말이다. 최근엔 라임 사태 주범이 해외로 도피하기 전인 2018년쯤 특수부·강력부 출신 검사들에게 룸살롱 접대를 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된 마당이다. 2016년 고교 동창 스폰서로부터 금품과 향응 등을 받아 유죄가 확정된 김형준 전 부장검사 경우엔 추가 뇌물수수 의혹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이첩됨에 따라 5년 만의 재수사가 이뤄지게 됐다.

‘불멸의 신성가족’들이 이런 부패에 둔감한 것은 끼리끼리 문화 때문이다. “검사들은 초임 시절부터 선배들에게 ‘우리 사회 최고의 엘리트’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듣는다. 엘리트주의는 패거리 문화로 연결된다. 스스로 최고라고 생각하기에 굳이 검찰 외부의 시선 따위엔 신경 쓰지 않는다. 다른 영역에는 가혹하면서 스스로에겐 관대한 것도 특유의 패거리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다.”(‘검찰공화국, 대한민국’ 176쪽)

패거리 문화는 전형적인 제 식구 감싸기로 연결된다. 검찰이 룸살롱 검사 3명 중 1명만 기소하고 나머지 2명은 불기소 처분한 게 최근의 대표적 사례다. 검찰은 술자리 비용 계산 결과, 두 사람이 1인당 ‘96만2000원’짜리 접대를 받아 청탁금지법상 처벌 기준인 100만원을 넘지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검사님들을 위한 99만원짜리 불기소 세트’라는 조롱을 받아야만 했다. 김 전 부장검사의 추가 혐의도 당초 검찰 수사 땐 인정되지 않고 종결됐다가 지난해 경찰 수사로 다시 불거진 사안이다. 과거 검찰의 치부를 들춰보면 이런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가짜 수산업자 사건으로 스폰서 문화가 도마 위에 오르자 법무부가 박범계 장관의 지시로 실태 점검을 위한 조직 진단에 착수한 건 당연한 수순이라 하겠다. 스폰서 문화는 이제 사라져야 할 적폐다. 법무부 감찰 등을 통해 척결하거나, 필요할 경우 경찰 대신 공수처가 전면에 나서서 발본색원해야 한다. 단순 해프닝으로 어물쩍 넘어갈 일이 아니다. 부패와 비리의 썩은 냄새가 진동을 한다.

박정태 논설위원 jt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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