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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섬情談] 듣는 마음

이승우(조선대 교수·문예창작학과)


한 아이를 놓고 서로 자기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두 여자에게 아이를 둘로 나눠 가지라고 판결함으로써 진짜 엄마를 찾아낸 솔로몬의 일화는 흔히 지혜로운 재판의 예로 인용된다. 이 이야기가 나오는 성경 본문 바로 앞에 솔로몬이 여호와께 ‘지혜로운 마음’을 구했다는 내용이 기록돼 있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백성을 잘 통치하기 위해 지혜를 구한 이 신임 지도자를 여호와는 마음에 들어 했다. 왕을 백성들의 송사를 판결하는 자,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자로 이해하는 당시 상황을 볼 때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을 구한 솔로몬이 칭찬을 들은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런데 ‘개역한글’ ‘새번역’ ‘현대인의 성경’이 ‘지혜로운 마음’이라고 표현한 이 단어를 ‘개역개정’ 성경은 ‘듣는 마음’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비슷하면서도 강조하는 바가 약간은 다르게 느껴진다. 그 본문을 그대로 옮기면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이다. 재판과 선악의 분별에 듣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뜻을 읽을 수 있다. 이 새로운 번역에 의하면 지도자에게 그리고 지도자가 행하는 선악의 분별을 위해 필요한 최고의 덕목은 지혜로운 마음이 아니라 듣는 마음이 된다. 듣는 마음이 지혜로운 마음과 다르지 않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고, 나아가 지혜, 즉 바른 판단의 근거가 듣는 마음이라는 해석도 가능할 것이다.

듣는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듣는 마음을 갖는다는 것은 어떤 상태를 가리키는 것일까. 말하는 사람의 말만 아니라 말을 하는 사람에게 집중하는 상태가 얼른 떠오른다. 우리는 남의 말을 건성으로 듣거나 다른 생각을 하면서 듣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 말은 우리 속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우리는 또 편의적으로 듣거나 자기 위주로 듣는다. 그럴 때 말은 변형되거나 왜곡된다. 온 마음을 다해 들어야 제대로 들을 수 있다. 말은 불완전해서 마음을 다해 듣지 않으면 정말로 전하려고 한 것을 듣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들을 때는 마음이 온통 귀가 돼야 한다. 잘 듣는다는 것은 말하는 사람이 한 말만 듣는 것이 아니라 말하지 않은 것, 말할 수 없었던 것까지 듣는 것을 뜻한다. 우리 말에 속말이라는 단어가 있다. 겉으로 표현되지 않은 말이 속말이다. 잘 듣는다는 것은 그 말까지 듣는다는 의미다. 표현하지 못한 마음까지 듣는다는 의미다. 마음 전체가 귀일 때 가능한 일이다.

나는 종종 신의 귀가 그와 같지 않을까 상상하곤 한다. 수많은 사람이 기도라는 형태로 신에게 말을 한다. 신의 무한성을 염두에 두지 않은 소치지만, 세상 사람들의 그 많은 목소리를 듣기 위해 신이 얼마나 큰 귀를 가져야 할지 생각하다 보면 신의 모습이 우주만큼 거대한 귀로 그려지기도 한다. 신은 모든 사람의 말을 마음을 다해 집중해 듣는 분이다. 우주만큼 거대한 귀, 존재 전부가 귀인 분이다.

솔로몬은 듣는 마음을 갖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그는 자기에게 꼭 필요한 것을 구했다. 백성들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분별해야 하는 것이 왕의 역할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필요하지만, 판단과 분별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특히 요구되는 기능이 잘 듣는 것이다. 듣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잘 듣는다는 것은 마음을 다해 듣는 것, 말한 사람의 말만 아니라 말하지 않은 속말까지 듣는 것, 말하는 사람의 처지와 상황을 헤아려 듣는 것이다. 왜곡하지 않고 듣는 것이다.

큰 선거가 다가오니 들으러 다니는(다닌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일종의 행사나 이벤트를 벌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듣고 싶은 사람에게만 듣거나 듣고 싶은 말만 듣는 것 같기도 하다. ‘마음 없이’ 그저 듣기만 할 뿐이라는 의지도 엿보인다. 옳지 않다. 어떤 성경은 듣는 마음을 ‘깨닫는 마음’이라고 번역했다. 들음이 깨달음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왜 듣는단 말인가. 늘 듣던 말만 듣는다면 무슨 깨달음이 생기겠는가. 마음 전부를 귀로 만드는 일부터 할 일이다.

이승우(조선대 교수·문예창작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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