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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 커뮤니티 매핑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장


2014년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영어판이 등장한 이후 지식사회의 최대 화두는 ‘불평등’이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나 윤여정이 출연한 영화 ‘미나리’도 불평등을 화두로 삼았기에 세계에서 주목받았을 것이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자주 발생하는 금융 위기는 모두 불평등이 초래한 결과로 볼 수 있다.

누군가는 말했다. “불평등은 파국으로 가는 급행열차다!” 그런데도 이 열차를 멈추게 할 방안은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21세기 말에는 플랫폼 기업을 소유한 0.001%의 인간이 세상을 완전히 지배하고, 99.997%의 인간은 단순 노동자로 전락하거나 마땅한 일자리 없이 기본 소득으로 살아가는 비극적 처지로 전락한다는 극단적 예측마저 등장했다. 나머지 0.002%는 플랫폼을 활용해 대중에게 큰 영향력을 미치는 유명인들이다.

지금 돌아가는 형세로는 그와 같은 디스토피아적 세상이 반드시 오고야 말 것이라는 두려움마저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세상을 만들 수 있게 된 결정적 기술은 전 세계를 하나로 연결하는 디지털 기술이다. 실제로 초연결사회를 만든 디지털 기술은 극심한 양극화를 초래했다.

밤이 깊을수록 반드시 새벽이 오는 법이다. 인류 5000년 역사에서 무수한 기술이 탄생했어도 인간이 기술에 완전히 종속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인간은 언제나 기술을 인간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왔다. 모든 기술은 선과 악, 은총과 저주라는 양면성이 있는 양날의 검이었다. 디지털 기술 또한 다르지 않았다. 이미 인류는 디지털 기술의 긍정성을 키워 인간의 자존심을 키우며 공존의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한 예를 들어보자. 미국 메해리대 임완수 교수는 2005년 집단지성을 이용한 뉴욕 화장실 온라인 지도를 만든 것에서 착안해 ‘커뮤니티 매핑(커맵)’이라는 실천운동을 벌이고 있다. 커맵은 간단하게 말해 “기술을 이용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일”이다. 시민들이 직접 참여해 지역 문제 해법을 다방면으로 모색해보는 시민 과학 형태다. 임 교수는 “우리가 몰랐던 사실을 일깨워주고, 서로 소통하게 하면서 간과했던 주변 문제를 다시 보게 하고, 새로운 방법으로 우리 지역과 사회 전체를 바꾸고, 인류 역사를 어느 정도 갱생하고 보완하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갖고 운동을 펼쳐왔다고 고백한다.

임 교수가 커맵을 실천운동으로 벌이고 있는 현장 중 하나는 학교다. 임 교수는 학생들이 직접 지역공동체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수행할 수 있도록 교사들과 연대하고 있다. 장애인 편의시설 지도나 지역 문화 지도 만들기 등 커맵을 통해 학생들은 집단지성을 경험하고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을 확인하게 된다. 임 교수는 커맵이 궁극적으로 참여와 소통으로 타인과 공감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등장하는 참여, 소통, 공감, 배려야말로 인공지능 시대를 이겨낼 수 있는 역량이라고 볼 수 있다. 각자도생의 경쟁 교육이 벌어지던 많은 학교에서 학생들이 한 사람의 작은 행동이 지역사회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깨우쳐 간다면 개인의 미래뿐만 아니라 인류의 미래 또한 반드시 긍정적으로 변할 것이다.

기술이란 결국 사람이 개발해 활용하는 것이고, 어떻게 개발하거나 사용하느냐에 따라 인간의 행복과 불행이 결정되곤 했다. 디지털 기술 또한 우리가 잘만 활용하면 인간의 존재감을 떨어뜨리는 게 아니라 키울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유토피아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는 커맵과 같은 방안을 앞으로도 많이 찾아낼 것이다. 아니 반드시 찾아내야만 한다. 그런 일이 분명 고난의 길일지언정 우리가 찾아내지 않으면 인류의 미래는 없기 때문이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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